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돈 되는 해삼 무역

부에노(조운엽) 2021. 3. 3. 06:35

 

 

멍게, 해삼, 소라 파는 아낙

돈 되는 해삼 무역

학생 때 친한 친구를 놀릴 때 '바보, 멍충이, 멍게, 해삼, 말미잘 같은 놈'이라고 했겠다.

바보, 멍청이는 그렇다 쳐도 왜 맛있는 멍게, 해삼을 거기에다 붙였을까?

우렁쉥이라는 멍게, 해삼과 말미잘을 말하면 여드름이 많이 나 피부 상태가 좋지 않은 청춘을 비꼬는 욕이 된다.

어렸을 때 푹푹 찌는 한여름에 동네 형들과 동대문 야외 수영장에 놀러 간 기억이 난다.

까만 튜브 타고 첨벙대고 놀다 지치면 수영장에서 나와 손수레에서 파는 순두부국 사 먹고 멍게와 해삼까지 얻어먹으면 지상 최고의 날이었다.

무 조각에 꽂아놓은 녹슨 옷핀으로 멍게, 해삼을 찍어 초장에 먹는 알싸한 맛이라니...

바다는 지구 표면의 70% 이상이라고 한다.

지구에서 땅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가 바다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을 것이다.

심지어 깊은 바닷속에 뭐가 사는지도 다 모른다.

태평양 여러 곳에서 말린 해삼을 미식가의 나라 중국이 무한정 사들였다.

일본은 중국 상인과 비단, 자기를 바꾸는 재미로 질 좋은 건해삼을 모아 주며 곳곳에서 국제 무역이 시작됐다.

해삼은 말 그대로 '바다의 인삼'이란 뜻이다.

해삼에게도 인삼의 사포닌과 유사한 성분이 있다고 한다.

해삼을 영어로는 'Sea cucumber'라고 하는데, 몸이 원통형으로 길쭉하고 우둘투둘한 돌기가 난 것이 오이를 닮아서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산에서 나면 산삼이요, 바다에 살면 해삼이라, 다들 이 '삼'자가 붙는 것엔 환장한다.

해삼은 가을에서 봄까지 우리나라의 얕은 바다에서 보이는데 한여름 철에는 보기가 힘들다.

수온이 25°C 이상이 되면 해삼은 서늘한 깊은 바다에 들어가 여름잠을 잔다고 한다.

곰, 뱀, 개구리 아저씨들은 겨울잠을 자지만 해삼은 반대로 여름잠을 자는 모양이다.

해삼은 지렁이가 흙 속의 유기물을 먹고 땅을 기름지게 하는 것처럼 갯벌을 먹고 살며 덕분에 뻘을 정화한다.

해삼은 청삼, 흑삼, 홍삼으로 구별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체색이 다른 것은 먹이 탓이라고 한다.

갯벌의 유기물과 청조류를 먹는 놈들이 흑해삼과 청해삼이며, 해조류 중 홍조류를 주로 먹는 것이 홍해삼이다.

이렇게 특별한 영양분들을 먹기에 해삼이 약이 된다는 썰이 나오는 모양이다.

해삼을 먹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아서 지중해 연안의 몇 나라와 중국,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 정도라고 한다.

예로부터 해삼은 피나 혈관을 보하는 한약재로 썼다.

중국에서는 해삼이 들어가는 귀한 요리로 알려진 것만 해도 스무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오도독 씹히는 쫄깃한 해삼 회에다 해삼이 들어간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은 다 별미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나부터 바다 거를 보면 입맛부터 다신다.

중국 사람은 평상시 잘 먹는 것이 보약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먹을 땐 체면 차리지 않는단다.

건해삼을 불리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생해삼은 물에 넣고 끓이면 딱딱해져 씹기 힘들어 익혀 먹으려면 반드시 불린 해삼을 써야 한다.

해삼 요리가 비싼 이유는 해삼이 귀한 것도 있지만 재료를 준비하는 데 시간과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란다.

함경도와 인접한 연해주 지역이 해삼 산지로 유명했는데 블라디보스토크의 옛 이름이 해삼위라고 했단다.

해삼이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에 유통된 것은 16세기 이후이다.

해삼의 무역 망은 일본과 조선 북부, 동남아와 호주 북부까지 중국 상인이 찾아다녔단다.

해삼은 위험을 느끼면 내장을 항문으로 확 쏟아 버린다고 한다.

그런데 속을 다 빼 주고도 내장을 재생하니 보통 질긴 생명력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해삼을 놀라게 해 창자를 빼낸 다음 두 토막 내 물속에 놓아두었더니 두 마리로 변신하여 꾸물꾸물 기어 다니더라는 괴담 같은 이야기도 있다.

해삼 창자는 일본 사람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도 좋아해서 횟집에서 단골손님에게만 준다고 한다.

해삼은 항문 안에 있는 호흡수라는 특이한 기관으로 호흡한다.

깊은 바다에 사는 큰 해삼 항문에는 '숨이고기'라는 것이 공생한다.

큰 고기가 나타나면 숨이고기는 얼른 해삼의 항문으로 쏙 들어가 피한다.

이렇게 숨이고기는 해삼한테 신세를 지는 대신 항문을 들락날락하면서 호흡수를 깨끗하게 해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숨이고기가 아닌 놈이 항문을 비집고 들어오면 해삼이 사정없이 독을 뿜어 쫓아낸다고 한다.

그렇게 한 번 혼쭐난 물고기는 다시는 해삼 근처에 얼씬하지 않는다고 한다.

눈도 코도 없는 해삼이지만 아군과 적을 귀신같이 구별하는 것을 보면 우리 인간이 보기에는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전 세계 해삼 생산량의 90% 이상이 중국에서 소비된다.

중국 경제가 발전하며 부자가 늘고 중산층까지 해삼을 먹기 시작했다.

돌기가 여섯 개가 난 일본 홋카이도산 해삼을 최고로 쳐준다.

반면 돌기가 없이 미끈한 더운 나라에서 나는 것은 맛도 떨어지고 훨씬 싸단다.

상품 1kg에 800만 원 선에 거래된다고 하니 참치 톤 당 몇만 불 가격도 저리 가라 이다.

비싼 전복에 비해도 열 배 이상 비싸다.

샥스핀 등 고급 요리로 알려진 것도 원자재값은 해삼에 비하면 죄송하지만, 조족지혈인 모양이다.

중국 수산물 유통회사에서 물이 차고 깨끗한 우리나라 진도에 양식장을 만들려고 하고 있단다.

우리나라에서 흔한 해삼을 양식 잘하면 부자 되는 세상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