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다리회와 고래회충
회를 처음 먹어본 게 아마 군 시절인 거 같다.
해운대 탄약창에 선임하사와 암호병 그리고 통신병인 글쓴이와 세 명이 파견 근무를 했다.
석 달 동안 근무하면서 한 일은...
없다.
그냥 먹고 놀았다.
다 전시를 대비해 준비하는 건데 평시라 지금 기억으론 군기 빠진 행동을 자제하는 정도에서 정말 하는 일 없이 빈둥댔다.
자대는 대구 2군 사령부에 있지, 탄약창 간부들은 영내에 철조망 치고 출입을 통제하는 통신대에 들어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출입 기록이 남겨지고 만약 암호 자재 분실 등 사고가 터지면 필히 보안대의 조사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직 장교나 주번하사관은 출입문 밖에서 '어이! 통신대 별일 없나?' 하고 소리친다.
'충성!' 하고 경례하며 들어오시라고 해도 절대 안 들어왔다.
총 맞았나...
출입자 명단에 계급, 군번 그리고 이름 적어놓으면 언제 족쇄가 될지 모르니 말이다.
암호병이 정기 외박을 나갔다 귀대하면서 어머니가 먹을 것을 한 보따리 싸주셨다.
집이 다대포라고 했든가, 암튼 고생하는 귀한 아들과 동료 군바리들 먹으라고 바리바리 싸주셨는데 그중 도다리회가 있었다.
청계천 판자촌 출신이 언제 회를 구경이나 해봤겠냐고.
고저 자반고등어나 임연수 한 토막이면 감지덕지했지...
사 홉짜리 소주가 비워지며 알딸딸해지니 할 수 없이 안주로 한입 먹어봤다.
난생처음 회를 된장 빵에 찍어 먹으니 물컹하니 이상했다.
근데 양념 맛인지 먹을만했다.
그렇게 회를 먹기 시작했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배 타고 일본, 미국만큼이나 많이 들어갔던 캐나다 밴쿠버에서 입항 대기 중에 낚시하면 도다리가 엄청 많이 올라왔다.
깨끗한 바다에 고기도 많은데 캐나다 사람들이 잘 잡아먹지 않으니 낚시를 던지면 올라온다.
그런데 그것도 물때가 있는 모양이다.
아침밥 먹고 낚시를 시작하면 계속 올라오다가 해가 많이 올라온 열 시쯤 되면 입질이 한가하다.
그럼 낚시를 멈추고 오후 늦게 물때까지 쉰다.
그렇게 잡은 도다리는 회 좋아하는 선수들은 바로 초장 바르고, 남는 건 배 따서 소금물에 적셔 선미 난간에 걸어 말렸다.
그리고 출항하면 너나 할 것 없이 곶감 빼먹듯이 구워 먹었다.
광어와 도다리는 가자밋과에 속하고 바닥에 살며 생김새가 비슷하다.
좌광우도라고 눈과 입이 좌측이면 광어, 오른쪽에 있으면 도다리이다.
또 광어는 잡식성이라 이빨이 있고, 도다리는 이빨이 없고 입이 좀 작다 하니 이빨 유무로 구분이 된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다.
가을 전어는 맞는데 도다리도 가을에 맛있다.
여름부터 가을에 살이 오르고 산란기에는 맛이 떨어지는 생선이니 그냥 상인이나 업자가 만든 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도다리의 식감은 광어와 우럭보다 쫀득하고 고소한 느낌이다.
광어는 넙치라고도 하는데 횟감으로 쓸 때는 대부분 광어라고 말한다.
모랫바닥을 선호하며 헤엄 속도가 느려 등 보호색으로 숨어 있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자연산은 배가 하얀색인데 양식어는 갇혀서 크니 스트레스로 황갈색 얼룩이 있다.
자연산에 얼룩이 있으면 양식장에서 탈출해 큰 놈이라고 보면 된다.
돔, 우럭과 함께 광어는 한국과 일본에서 횟감으로 가장 인기 있는 생선이다.
요즘 양식을 많이 해 유통되는 자연산은 10%밖에 안 될 정도로 일반 서민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국민 횟감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산을 최고로 쳐준다지만, 기생충과 어느 바다에서 놀았는지 중금속과 방사능 문제가 있다.
고래회충은 고래에게만 기생하는 게 아니라 고래 똥을 먹은 모든 어류에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즐겨 먹는 연어, 광어, 도다리, 우럭, 아나고, 오징어, 고등어, 갈치 등 여러 종의 바닷고기에서 다 발견된다.
이름이 고래회충인 이유는 최종숙주가 고래이기 때문이다.
고래회충은 살코기 사이에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어 감염된 물고기를 회로 먹으면 회충이 위장 벽을 뚫고 들어가 문제가 생긴다.
오염된 회를 먹고 서너 시간 후부터 회충이 내장 벽에 파고들면서 위염이나 위궤양으로 착각할 수 있는 심한 복통과 구토가 일어난다.
고래회충으로 인한 증상인 줄 몰라 복통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그대로 두면 보통 고래회충이 일주일 내에 죽어 그냥 잊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재수 없으면 내장이나 혈관을 뚫어버려 장 출혈 등 심각한 후유증이 드물게 발생한다.
보통 고래회충은 살아있는 물고기의 내장에 있기에 내장을 없앤 후 칼과 도마를 깨끗이 씻고 회친 활어회에 있을 확률은 낮다.
그러나 내장을 제거한 후 칼과 도마를 잘 씻지 않고 회를 썰면 칼과 도마에 묻었던 유충이 묻어올 수 있다.
만일 회를 먹은 후 본인이나 일행의 배가 아픈 경우 바로 병원에 가서 회를 먹었다고 말하고 치료받아야 한다.
일반 구충약이 듣지 않기 때문에 내시경으로 고래회충을 하나씩 잡아 빼는 것이 효과적이다.
자연산 물고기는 냉동하거나 충분히 익히면 고래회충이 죽는다.
양식 생선에는 관리가 부실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고래회충이 없다.
미국 FDA는 날로 먹을 생선과 조개류는 -35°C 이하에서 15시간 이상, 혹은 -20°C 이하에서 7일간 냉동시켜서 유충을 죽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
소금에 절이고 그 뒤에 식초에 한 번 더 절여도 유충이 죽지 않고, 냉동한 지 5일이 되어도 유충이 살아있는 경우가 있다.
바닷고기가 죽으면 내장에 있던 고래회충이 살을 파고든다.
죽은 고기를 회 쳐서 먹지 말아야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어차피 냉동할 것이라면 권고대로 충분히 하는 게 좋다.
좋은 회 먹고 배 아파 설사나 하면서 개고생하면 신사, 숙녀 체면 구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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