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문과 운하
우리나라 서해는 간만의 차가 커 큰 배가 인천항에 들어오기가 쉽지 않다.
화물선이 인천 내항에 들어오려면 갑문식 독을 지나가야 한다.
갑문은 밀물 때만 열고 짧아서 금방 통과한다.
인천항 갑문을 통행할 때 지나가는 배가 십몇m밖에 떨어지지 않아 반갑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갑문은 2개로, 큰 갑문은 5만 톤급, 작은 것은 만 톤급 선박이 다닐 수 있으며 하루 이십여 척이 드나들 수 있다.
더 큰 배는 새로 준설한 송도 신항에 들어가 하역한다.
운하는 선박이 다닐 수 있게 인공적으로 만든 물길을 말한다.
그리스에는 기암절벽 사이로 코린트운하가 뚫려 있다.
고대부터 운하를 만들려고 했으나 사람 손과 곡괭이로만 일하니 잘 안 되었다.
코린트운하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칼리큘라 등도 시도했으나 그들이 암살당하면서 중단되었다.
네로황제도 유대인 포로를 동원해 양쪽에서 뚫고 가는 대공사를 했으나 중앙에 엄청나게 큰 암석 지대를 만나 결국 공사를 포기했다.
그러다 다이너마이트가 나오고 기술이 발달한 근대에야 운하를 뚫는 데 성공했다.
이런 건 우리나라의 안면도도 비슷하다.
서해안 물길이 거세 배 사고가 자주 나 태안반도에 고려 시대부터 운하를 파려고 했지만, 완성은 인조 때였으니 수백 년 걸렸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안면도는 원래 섬이 아니고 육지였다.
중국이 인해전술로 판 대운하 말고는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중요한 운하들이 완성된 것은 19세기 이후였다.
건축기술이 발달하기도 했고 그만큼 해상 물동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운하를 파는 데 드는 비용보다 만들고 난 후 버는 게 더 많아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에즈와 파나마운하는 19세기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만든 위대한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수에즈운하는 공사 중 사람이 만 명 가까이 죽은 큰 공사였으나 사막 평지에 삽질해서 물길만 뚫는 공사였기 때문에 쉽게 판 편이다.
반면 파나마운하는 중간에 산이 있어 높이 차가 나는 곳마다 갑문을 설치하여 배를 올렸다가 내리는 방식으로 운하를 만들었다.
당시로는 최신 기술과 어마어마한 공사비를 들였고 수만 명이 희생되어 만들어졌다.
전에 유럽에서 인도로 가려면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으로 돌아가야 했으나, 수에즈운하가 개통되면서 항해 거리가 구천여km까지 단축되었다.
파나마운하도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가는 뱃길을 만여km나 줄여주었다.
예전에 유럽에서 인도로 갈 때 아프리카를 빙 돌아가야 하는 게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거친 바다에 인명 피해가 컸다.
그래서 프랑스인 레셉스가 1869년에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를 건설했다.
그는 누구도 성공하리라고 예상치 못한 대공사를 성공시킨 영웅이 되었다.
수에즈 운하를 개통한 지 십여 년이 지난 후 그는 파나마를 관통하는 운하 건설권을 땄다.
이젠 누구나 레셉스가 파나마 운하를 만들 거라고 믿었다.
길이 192km의 수에즈 운하를 뚫은 그에게 길이 82km의 파나마 운하쯤이야...
은행은 어마어마한 대출을 난감해하며 거절했다.
하지만 레셉스는 프랑스의 영웅이었다.
그는 프랑스인의 애국심에 호소했다.
수많은 프랑스인이 운하 건설 비용에 투자했다.
프랑스 기술자 삼천여 명과 카리브 제도 출신의 흑인 노동자 이만여 명이 공사에 들어갔다.
눈으로 보는 지도와 실제 자연은 엄청 다르다.
수에즈 운하의 경우 파야 하는 육지의 최고도는 해발 16m에 불과했다.
그러나 파나마 운하에서는 해발 50m 이상인 곳이 8km가 넘었으며 심지어 100m가 넘는 곳도 있었다.
이 많은 흙과 암석을 파내는 일은 일찍이 지구 역사에 없었다.
실제 공사에 들어가니 말라리아, 황열병뿐만 아니라 날씨도 큰 영향을 주었다.
수에즈는 사막기후의 영향을 받아 비가 내리는 날이 거의 없었지만, 파나마 지역은 연중 비가 많이 내리는 열대우림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공사 중에 수시로 홍수와 산사태가 일어났다.
레셉스는 여기에 대한 방비를 하지 못 해 공사하던 것들이 홍수로 떠내려가는 등 난리판이었다.
수많은 인부가 죽고 레셉스는 파산했으며 수만 명의 프랑스인이 투자금을 날렸다.
1904년 미국이 운하 건설을 다시 시작했다.
미국은 레셉스의 실패를 발판 삼아 철저히 준비했다.
파나마운하 대공사에 성공하려면 날씨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에 미 육군 공병대는 대대적으로 모기 방역을 했다.
이제 홍수나 산사태, 황열병으로 인한 인부 사망이 줄었고 미국은 레셉스가 수에즈운하를 만들 때 썼던 수평 운하 방식 대신 갑문식 운하 방식을 택했다.
마침내 1914년 태평양과 대서양이 이어졌다.
덕분에 파나마는 사실상 미국의 지배에 들어간다.
그리고 파나마운하를 발판으로 미국은 세계 경제의 주역으로 뜬다.
파나마는 2000년 들어서야 운하 운영권을 갖게 됐다.
파나마운하는 물길 중간에 여러 갑문을 설치해 물을 채우고 빼면서 배를 계단식으로 통과시킨다.
운하를 통과하는 데 8시간 정도 걸리지만, 대기 시간 등을 합치면 하루 이상 걸린다.
갑문을 통과할 때는 수로 양옆에서 예인 전동차가 끌고 터그보트가 밀어준다.
파나마운하가 해상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많은 배가 여기에 맞춰 만들어졌다.
파나마운하의 경우 폭이 33m라서 그 이상 되는 배는 지나갈 수가 없었다.
지금은 운하를 키워 폭 49m에 12만 톤급 선박이 지나갈 수 있다.
수에즈운하는 조금 더 널널하여 16만 톤급 화물선이 통행할 수 있다.
운하 통과비는 척당 20만 불 선이고 배 크기, 화물 적재량에 따라 다르다.
운하를 통과할 수 없는 큰 배는 희망봉이나 마젤란해협을 마냥 돌아가야지...
운하는 소유국이 관할하며 자국 하천과 비슷한 법적 지위를 갖는다.
그러나 조약에 의해 국제 운하로 지정될 경우 외국 선박에 대해 자유 운항을 보장하고 거부해선 안 된다.
국제 운하인 수에즈와 파나마운하는 조약에 의해 평시, 전시의 모든 외국 선박의 평화적 운항이 보장된다.
수에즈운하는 교전국의 선박도 통행을 허용하도록 보장되어 있으나, 파나마운하는 영악한 누군가에 의해 조약에 해당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모든 운하가 수에즈나 파나마운하같이 바다와 바다를 연결하는 것은 아니며, 강과 강을 연결하거나, 혹은 전혀 물길이 없는 내륙에 건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육상 교통이 발달하고 도로망이 잘 갖춰진 현대에는 이러한 내륙운하는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화물선은 비행기보다 엄청난 양과 다양한 화물을 운반할 수 있기에 경쟁력이 있다.
유럽에는 많은 운하가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다섯 개의 운하가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으며, 그 외에도 유럽에는 강 따라 많은 운하가 있다.
독일에는 세계 3대 운하에 들어가는 키일운하가 있다.
북해와 발트해를 잇는 운하로 해안 따라 돌아가는 것보다 500여km가 짧고 북해의 끔찍한 파도밭을 피할 수가 있다.
전에 키일운하를 통과할 때 맞은편에서 오는 배를 먼저 보내기 위해 잠시 계류 중에, 갈대숲 우거진 곳에 그림같이 아름다운 카페가 보여 배에서 내려 잠시 그곳에 간 적이 있었다.
북해의 잿빛 하늘 아래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시나몬이 든 레드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나는 Nina의 숨결을 따라 여기까지 왔고 혜린이 누나와 달리, 살며 사랑하며 즐기기 위해 이 와인을 마시노라.’라고 쓴 엽서를 남희에게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길 가던 예쁜 독일 아가씨가 뭔가를 묻기에 ‘No speak Deutsch. Can you speak English?'라고 되물으니 그녀는 고개를 살래 흔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예쁜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
함부르크에서 남희와 만났을 때 그녀가 말한 게 생각난다.
“내가 너 사랑하는 거 알고 있지? 아주 오래전부터... 동숭동 눈 오던 그때보다도 더 오래전, 아니 강촌에 엠티 갈 때 그전부터...”
“...”
“내 가슴 한쪽은 늘 네게 가 있을 거야. 이제 우리는 혼자가 아니야. 너는 혜린이 언니의 고통을 이겨내고 키일운하에서 당당히 세상을 마주 보고 설 수 있었잖아.”
“...”
“너는 너의 자리에서... 나는 나의 자리에서... 언젠가 다시 닿게 되는 날까지, 이렇게 서로를 가슴으로 안고 사는 거야. 그게 언제가 되더라도...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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