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엔n

이민을 떠나는 이유

부에노(조운엽) 2006. 12. 31. 20:18


 

아르헨티나의 Gaucho(카우보이)

 

 

내가 이민을 떠나는 이유

 

내가 이 나이에 왜 이민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도피일까, 도전일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익숙한 내 나라 내 땅에서 걍 편안하게 살 것이지, 낯설고 물 설은 남의 나라에 반백의 나이에 도전한다는 말인가. 그 원인은 무엇이고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걸까.

 

돌총(돌아온 총각)으로 삼 년째 혼자 살면서 오 년간 운영하던 뷔페 식당을 며칠 전 정리하고 출국하기 전 남은 며칠을 원룸에서 혼자 지내면서 새삼 의식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가게에서 혼자 먹고 자면서 아침 9시에 식당문을 열었다가 밤 열시에 문 닫을 때까지 가게에 처박혀 있으니 의식주에 별다른 경비를 지출할 일이 없었다. 사람이 사회활동을 하려면 제대로 갖춰 입어야 하고, 때되면 먹어야지, 일 끝나면 씻고 잠 잘 공간이 필요한데 가게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다 보니 그런 것들에 대한 중요성을 별로 느끼질 못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든 적든 한국에서 10년, 20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나의 전공은 한 때는 남부럽지 않게 잘 나갈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시대의 변화에 밀려 전공과 무관한 삶을 살 수밖에 없도록 내던져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익숙했던 것들과 무관한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고난의 연속이다. 전공과 전혀 관련이 없는 생활을 한 십 년 열심히 살다 보니 나름대로 내공이 쌓여서 돈 없이도 가게를 차릴 수도 있고, 월 돈 천 이상 벌어도 봤고 또 벌 수 있는 노하우도 생겼다고 자부한다. 

 

그렇게 10년을 더 식당을 운영한다고 가정해보자. 열심히 해서 운이 좋으면 돈도 벌 수 있겠지만, 내가 죽었다 깨도 박지은 아빠가 운영하는 삼원가든같은 음식 재벌이 될리도 없고, 그냥 죽을 때까지 남이 먹다 남은 음식 뒷치닥거리나 하다가 음식점 영감으로 늙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처자식 거느리고 살 때나 돈이 많이 필요했지 혼자서 사니 돈을 모으는 재미도 별로 없다. 내가 태어날 때 백 원짜리 동전 한 잎 갖고 나왔던가. 정주영 회장이 돌아가실 때 그 많은 돈을 노자돈으로 한 푼이라도 가져갔던가.

 

나의 미래가 빤히 보인다면 내 자신에게 반문해본다. 넌 과연 어떻게 살고 싶니......

 

지나온 삶의 여정과 현실의 내 모습 그리고 미래의 삶이 순간적으로 교차한다. 그래 분명 이건 아니야. 이민이 도피일 수도 있지만 도피 경비로는 너무 많은 부대 비용이 지출되는데, 이건 분명 도전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야. 그동안 돈만 벌기위해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즐겁게 사는 거야. 언젠가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나이가 될 거거든.

 

그런데 하고 많은 나라들 중에 하필이면 멀고 먼 남미쪽이냐? 고 반문해본다. 거주 비용이 적게드는 가까운 중국, 동남아, 아프리카 등 많은 나라가 있는데..... 이상하게 나는 남미쪽에 정이 많이 간다. 그동안 해상 생활하면서 스쳐지나간 50여개 국 중 좋았던 나라를 꼽아본다면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구아이, 베네주엘라, 콜롬비아, 멕시코, 도미니카 공화국, 캐나다, 호주, 싱가폴, 스위스 정도이다. 그런데 미주나 호주, 유럽은 놀러가라면 좋은데 나보고 가서 살라면 이유야 어쨌든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레 남미쪽에 관심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 그들의 넉넉한 삶의 여유가 부러워서...... 

 

넓은 땅에서 작은 거주 비용으로 삶의 질을 높이며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다. 우리나라가 요 손바닥만한 작은 땅과 불과 얼마전 필리핀보다 못살던 최빈국에서 세계 경제 10위권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인 한국인의 몸에 밴 '빨리빨리' 문화를, 느려서 미덕(?)인 남미에서 반만 풀어먹어도 5년, 10년 후에는 분명 잘 살 수 있겠다는 믿음과 자신이 있다. 

 

한국에서 죽을 둥 살 둥 돈버느라고 돈 쓸 시간도 없고, 아파트 한 채 십몇 억씩 하는 거 사고,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면서 늙어가는 그런 삶을 사느니, 이미 비운 마음(?)을 더 비우고 남미의 호젓한 내 농장에서 말 타고, 낚시하며, 나중에 이곳으로 여행이나 유학온 친지나 후배들에게 맛있는 와인을 곁들여 아사도를 구워주며 그들을 실질적으로 도와주면서 또 현지인들에게도 봉사하는 삶, 스페인어를 열심히 배워서 한글과 스페인어로 좋은 글을 써서 내가 행복하고, 이웃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장작과 적쇄, 소금만 있으면 되는 아사도

 

출처 : 멀고도 가까운 은의 나라 cafe.daum.net/imigrantessuda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