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3614 2007.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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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레스토랑의 프로(?)들 이야기
나보다 두 살 많은, 이혼한지 석 달 되었다는 주방장 안또니오가 요즘 별로 기분이 안 좋은 거 같다. 28살 먹은 예쁜 독또르(의사) 애인과 뭐가 안 좋은지 전화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자꾸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고 언성 높이는 일은 없다. 어쩌다가 눈이 마주치면 어깨를 움찔하며 한 손을 펴고 ‘Bien, Bien. No, problema(좋아, 좋아. 아무 문제없어)!’라고 말한다. 나한테 의사 친구를 소개시켜준다고 해서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데 잘못되면 어쩌나.
안또니오의 여친 가브리엘라 양
이곳에는 남녀 비율이 1 대 7이란다. 국가에서 대학교까지 무상으로 교육시키는데 반해 국내 일자리가 별로 없어서 남자들은 돈 벌러 외국으로 많이 나가 있어서 성비가 그렇게 된단다. 그래서 남성들의 천국(?)이라 할까, 20대 초반의 이혼녀가 즐비하고 의사, 변호사 이런 직업을 가진 유능한 여인이 상대적으로 조금 부족한 듯한 남성을 데리고 산다. 부인은 일하러 나가고 남편은 집에서 아이 보고 정원이나 다듬으면서 백수로 지내는 남자가 많단다. 고국에서 말 안 통하는 외국 아가씨와 결혼 할 생각을 갖고 있는 청년은 우루과이 아가씨도 염두에 둬 보시지.
애인 말고도 Amiga가 8명이라나...
생활 리듬이 우리와는 달라서 항상 늦게 자고 아침 늦게 출근하는 주방장 안또니오가 출근 인사를 잘하고 나서 또 인상이 안 좋다. 그러더니 나를 VIP룸으로 부르더니 ‘Bueno, Big problema!'라고 정색을 하고 말한다. 심상치 않은 표정에 긴장해서 뭔 말인가 주의 깊게 들었더니 고기가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더니 모사(홀 서빙)를 불러서 몇 마디 말을 하니까 이 아가씨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아름다운 목소리로(아가씨가 말하는 스페인 억양은 대부분 참 듣기 좋다. 거기다가 목이 메어 말하는데......) 자기는 안 가져가고 안또니오와 부에노가 잠깐 같이 나간 사이에 청소하는 청년이 소고기를 들고 나갔다고 말했다.
쁘로뻬시오날 모사 까리나 양과 함께
안또니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가씨를 진정시키고 잠시 밖에 나갔다 온다고 나갔다. 그런데 이 양반이 언제 냉장고를 확인 했을까? 출근하고 냉장고 근처에 가지도 않았는데, 참 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앗! 이 사람 조심해야겠구나. 정말 프로구나!’하는 생각이 순식간에 스쳐갔다. 한국에서도 종업원들이 주인 몰래 물건들을 빼돌리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모양이구나. 안또니오는 현재 직원들이 음식 맛이나 일하는 것이 자기들 말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어제 하더니 넘겨짚고 일처리를 한 것 같은 심증이 강하게 들었다.
익살 맞은 안또니오와 직원들
잠시 후 돌아온 안또니오는 이 사람들 다 내보내고 주방은 자기와 나 둘이서 일하고 쁘로뻬시오날 모사를 수배했으니 급료를 준비해 놓으란다. 급료는 참 별 것 아니다. 찬모의 경우 얼마를 원하느냐 묻더니 만 뻬소 달라는 말을 하니까 한 십 분 이야기하더니 보름 간 일해보고 맘에 안 들면 계약을 안 하고, 월 오천 뻬소(20만 원)에 찬모가 만든 음식 매상의 2퍼센트를 주는 조건으로 확정 지었으니 며칠 일한 거 해봤자 몇 푼 안 되지. 모사는 자기가 4천 뻬소 달라고 했으니 역시 얼마 안 되고…….
그런데 이 우루과요 찬모가 만든 초코파이 비슷한 롤케익과 우유를 탄 까페 꼰 레체가 혀에서 살살 녹으면서 얼마나 부드럽고 맛있던지 단 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제 가게 안에서 한국말을 쓸 일이 없어졌다. 새로 구성된 직원은 스페인 주방장 안또니오를 필두로 아르헨띠나 출신 모사, 청소하고 잡일하는 우루과요 청년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이다. 아, 새로 들어온 직원들에게 한국어 인사말을 가르쳐주었다. 꼬레아노 교민들이 레스토랑에 오면 말하라고.
오늘 브라질 듀오가 삼바 노래를 하겠다고 찾아 왔다. 리허설을 하는데 안또니오가 어떠냐고 자꾸 물었다. 나는 브라질에 사시는 Poison 님을 생각하며 후한 점수를 주려고 했으나 그는 ‘Bien.' 하더니 출연료를 반으로 깎고 일주일은 그냥 부르란다. 아니면 말고. 우리말에도 ‘좋아.’라고 말끝을 흐리면‘별로’라는 의미가 있듯이 이들도 ‘비엔.’ 하고 말끝을 흐리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이 가냘픈 브라질 가수
안또니오에게 당신 정말 프로라고 추켜세웠더니 자기는 아니고 반대로 부에노가 프로란다. 내색을 잘 안 하는 부에노를 지켜보고 또한 한국인들의 부지런함과 은근과 끈기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모양이지.
키다리 프로 모사 아가씨는 출근하자마자 이곳에서 일한다고 여기저기 열심히 전화를 해대고, 우루과요 청년은 시키지 않아도 눈치 빠르게 알아서 척척 온갖 굳은 일을 다 한다. 새벽 1시에 가게 문 닫고 4시까지 온 동네 쏘다니며 영업 다니는 안또니오와, 새벽잠이 없는 부에노 영감은 이들이 출근하기 전에 쉬엄쉬엄 가게를 말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근데 유럽에 오래 사신 saci 님, 부에노가 할 수 있는 한국 요리가 백 가지는 넘어요. 전공과 관계없이 처자식 먹여 살리다 보니 늦게나마 빨리 맛있게 음식을 만드는 노하우가 생겨서 한국에서 작년 12월 중순까지 음식점 컨설팅도 해서 나랏돈도 받아먹고 요리 강습도 다녔다오.
공연을 마친 선수들을 접대하는 안또니오
- saci
- 부에노님... 그럼... 제가 거기 들렀다가 안토니오님들 더러 가게 보라고 하고... 그 두 명 아미가들과 헝가리로 날아갈까요... 그럼... 아마 소고기는 커녕... 가게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겠네요...... 07.03.23
- Zapata
- 은퇴하면 돈 좀 나오니 폐야 끼치겠습니까? 은퇴 전에 가려니 벌이가 걱정이라서 문제지요. 파나마 국적선도 요즘 한 5천 불 준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서 남미 가는 배를 부탁은 해놨는데... 07.03.23
- 부에노
- 회원님들 오시면 다 VIP죠. 무대도 얼마든지 쓰삼, 다 오야 맘이죠. 일부 개념없는 Anti들에게 기분 상할 때도 있는데 토마토 님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07.03.23
- 부에노
- 프랑스, 포루투갈,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 부둣가 레스토랑에서 마시던 싸구려 와인 보다 알헨, 우루과이 와인이 뒷끝이 훨 깨끗하네요. 양놈들 맥주를 물 대신 먹듯이 이 쪽 문화에서는 와인이 숭늉이구먼유. 아, 갑자기 헝가리가 가고 싶어요. 이 방랑벽... 07.03.23
- 부에노
- 서... 예전에 미 육군 장성이 되려고 열심히 조깅하는 대령들이 많았었지요. 그럴 필요까진 없고 자기 몸 자기가 관리하는 건데, 요즘 매일 저녁 와인을 마셔요. 선배님 생각이 많이 나요. 와인을 마시니까 소주 먹을 때 보다 아침에 부담이 없어요. 07.03.23
- 부에노
- 좋은 여자 친구 구해줄 거에요. 주방장 안또니오는 자기 친구가 5살짜리부터 80살까지 있다던데... ㅋㅋㅋ 아, 근데 모사 아가씨가 솔떼로 부에노에게 자기 언니 소개시켜 준다 하더니 갑자기 배가 나와서 안 된다고 하네요. ㅠㅠ 자기가 보태준 것도 없으면 07.03.23
- 부에노
- 안 선장님, 은퇴하시면 일 년에 두어 달은 이곳에 계세요. 제가 책임질게요. 책임진다고 해도 한국 같이 돈 들게 별로 없으니 서로 부담이 없지요. 애인은 아니고 친구가 두 명 생겼는데 22살과 24살 아가씨인데, 야들한테 이야기하면 선배님 07.03.23
- saci
- 하하하... 라틴의 좀 도둑질은 내 것 남의 것 구분이 잘 안되는 문화라서...... 그것 싫은데... 그나저나... 여자가 많은 나라라... 매력이 쪼금 떨어졌어요... 싸빠따님에게는 선호도가 조금 더 올라가셨겠지만...... 07.03.22
- Zapata
- 그러나 확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일이 아주 고약해질 수 있읍니다. 지금 다 잡아 선언을 하세요, 도둑질은 목아지에 월급 없다!!! 수 천만 불 어선도 벌어서 갚아라 하고 주는 문화를 아셔야 합니다. 이 집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합니다. 07.03.22
- Zapata
- 한때 우루과이는 엄청 비쌌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휘발유가 세계에서 제일 비싼가요? 그런 나라 거 세월이 흘러 아주 수월한 나라가 됩니다. 라틴의 좀 도둑질은 내 것 남의 것 구분이 잘 안되는 문화라서 그렇습니다. 07.03.22
- 토마토
- Bueno님의 일기형태의 글을 보니까 마치 저희들도 그 식당 운영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여기 있는 라틴마니아들은 마음으로나마 식당이 잘되기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07.03.22
- RailArt박우물
- 아, 전반적으로 스페인 영향을 받은 식민지들이라 기타들은 잘쳐요. 안디나 기타라고 첼로만한 큰 전통기타도 있지만 만돌린 크기의 차랑고는 볼리비아가 강세죠. 폴크롤레는 께나와 샴뾰냐류를 적절히 활용하여서 애수어린 곡들과 경쾌한 곡 모두를 카바하죠 07.03.21
- RailArt박우물
- 그나저나 제 밥 값은 노래 몇 곡과 연주로 대신할 수 있는거죠. 방금 중국 국립교향악단 연주회 보고 오는 길입니다. 강동석씨 협연이었죠. 근데 전 클래식보다 포크송이나 월드음악, 폴크롤레등이 더 좋아요. 목소리가 가미된 것도 좋고... 저 무대 찜입니다요. ㅋ 07.03.21
RailArt박우물
- 페루쪽은 드럼이나 건반을 거의 안 쓰고 기타 2대, 베이스 이렇게 구성을 잘하더군요. 위에 팀은 드러머랑 퍼큐션 주자까지 주로 리듬에 비중을 두었네요. 밑의 브라질팀은 건반보다 키타와 퍼큐션으로 하면 삼바기분이 더 날 텐데. 07.03.21
- saci
- 그나저나... 그 안또니오 아저씨한테... amiga로 줄 서고 싶네요... 그 소고기가 어디로 누구에게 간지는 잘 모르겠지만... 참 매력적으로 나이 드시는 분 같아요. 여자친구도 멋지구...... 오늘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07.03.21
- saci
- 그냥 내 남편처럼 자기 나라 음식 아니면... 절대 안 먹으려고 드는 그런 유형이 아닌가 싶어서요... 덕분에 난 헝가리 여자들 보다도 헝가리 전통음식 박사가 됐지만... 지난 번 염려해주신 댓글... 고마웠어요... 덕분에 더 좋은 친구가 된 것 같아요... 그분과... 07.03.21
- saci
- 젊었을 때 이야기를 책으로 내도... 너무다 다채롭고... 긴박감이 넘쳐서... 베스트 셀러되실 것 같던데요... 몇 달전만해도... 라틴방이 아주 활성화 되지는 않았던지... 댓글은 몇 개 없었지만... 참 좋았어요...... 제가 음식 챙겨드시라는 말...... 07.03.21
- saci
- 처음 여기 들어와서... 마구잡이로 한 삼십 장쯤... 그러니까 600개 글을 하루에 다 읽은 적이 있지요. 그래서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내 뇌에 입력된 자료가 마구 헷갈려서... 좀전에 님의 글을 몇 개 다시 찾아 읽었어요...... 와우~ 글솜씨가 상당하시네요... 07.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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