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당신을...' 합창으로 불러주고 있는 학생들.
어디서 배웠을까? 눈물 날 뻔 했네...
산띠아고 거리와 풍물시장
산띠아고 데 칠레는 지금 겨울이다.
우리나라 겨울처럼 그리 춥지는 않지만 새벽녘에는 무릎이 시릴 정도로 한기가 든다.
낮에 센뜨로에 나갔다가 학생들이 모여 있기에 사진 좀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까 좋다고 ‘와~’ 웃는다.
학생들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에 ‘Corea!’라 답하니......
‘사랑해 당신을......’이라는 포크송을 합창해주더이다.
지구 반대편 땅에서 젊은이들이 불러주는, 나 어렸을 적 남 앞에서 최초로 불러봤던 노래를......
감격~~~
눈물날 뻔 했어.
어디서 누구한테 배웠을까?
아, 왜 그것을 묻지 않았을까?
칭찬을 더 해주었으면 그 젊은이들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텐데.
말도 딸리지만 카메라만 들고 다니면 마음이 바빠.
사진 욕심에...
나 예쁘지?
카우보이 모자를 쓰면 영감님 대머리를 감출 수 있겠지...
뭘 살까...
사진만 찍지 말고 뭐 좀 사지...
삐에로는 웃고 있지...
거리의 음악가
여자 아이들 좋아할 물건이 많네.
순찰 중인 기마 경찰과 따로 점을 무료로 봐주는 칠레노
비둘기를 사랑하는 칠레노스
희한한 돌들...
초꼬라떼 종류도 다양하네
인형극 공연
체스 경기는 남녀노소가 다 즐기네
거리의 사진사
엄마에 떼 쓰는 모습, 찰칵... ^^
나, 예쁘게 찍어 줘~
책 고르는 사람들, 사진만 봐서는 주인인지 손님인지 모르겠어...
거리의 화가
사진엽서
남미나 유럽에서는 쌀 알에 사랑하는 사람 이름을 새겨 목걸이 해서 걸고 다닌다며...
은희의 사랑해
'라나 에 로스포'라는 혼성듀엣의 멤버였던 은희는 1971년 1월 '사랑해'를 발표, 히트한 후 곧 탈퇴한다.
은희는 1971년 7월 '꽃반지 끼고'를 발표해 '사랑해' 못지않은 히트를 하며 1971년도 MBC 10대 가수상 신인 부문에 이용복과 함께 신인 가수상을 받았다.
남녀 신인 가수상을 통기타 음악 가수들이 수상했으니 1971년은 수면 밑에 있던 통기타 음악이 완전히 주류음악권으로 떠올랐던 해이다.
그리고 1971년은 양희은이 음반을 내고 활동을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은희가 대중들에게 폭넓은 인기를 얻기에 유리한 점을 지니고 있었다.
양희은이 우렁차고 또렷한 발성으로 여성 보컬을 들려주었다면, 은희는 쟁반 위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여성적 특징을 보이며 샹송처럼 세련된 분위기를 풍겨주었다.
양희은이 청바지에 아버지 와이셔츠를 입고 나와 보이쉬한 매력을 보여주었지만, 은희는 목소리에 걸맞은 깜찍한 외모로 그에 어울리는 의상까지 연출했다.
한마디로 은희는 통기타 가수라는 새로운 흐름을 대표하면서도 목소리와 외모 모두를 갖춰 주류 음악권에서도 호평을 받을 만한 재질을 갖고 있었다.
재능을 활짝 꽃피운 그녀는 1975년 결혼을 위해 미국에 건너가기 전까지 통기타 음악 진영에서 여성을 대표하는 가수로 전성기를 누렸다.
은희가 '라나 에 로스포'를 탈퇴하면서 계약한 음반기획사는 작곡가 황우루가 운영하는 우루 프로덕션이었다.
1971년 3월부터 한 달에 당시 쌀 한 가마값인 만 원씩 받기로 하고 1년 6개월을 계약한 은희는 그랜드 레코드사에서 음반을 출시해 히트한 후 유명 인사가 되었다.
당연히 다른 음반사에서도 군침을 흘리며 영입을 시도했다.
그해 10월 은희가 계약금 120만 원을 받고 지구레코드사에 이중계약을 하자 황우루는 고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신인일 때는 적은 돈도 감사했으나 유명해지니 억울하게 느껴지는 심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고, 몸값이 올라가더라도 계약을 앞세워 대우를 해주지 않는 기획사의 무성의도 같았던 모양이다.
두 번째 구설수는 놀랍게도 1972년 4월 탈영병으로 불구속 수사를 받았다는 보도였다.
은희는 1968년 여고 1학년 때 오빠의 꾸중에 반항하는 심정으로 나이까지 속여서 여군에 입대했다.
대구 2군사령부에서 하사관으로 근무하다가 휴가 나와서 귀대하지 않아 탈영병이 된 뒤 3년 10개월 동안 가수생활을 하다가 주민등록증 신청 때 신원조회로 탈영이 발각된 것이었다.
은희는 이렇듯 기성세대의 권위에 굴하지 않는 청년세대로서 당돌하고 뚜렷한 주관의 소유자였다.
시대는 바뀌고 있었으나 특히 여성에게는 겸손과 자중을 여전히 요구하는 당시 사회에서 은희는 튀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노래는 지금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 전통 갈옷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은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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