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유학생의 꿈
문화가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다 큰 개나 고양이도 사는 곳이 바뀌면 몸살을 앓지 않던가.
그런데 사람은 어떻겠는가?
어느 나라나 이민 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불편한 경우를 많이 겪는다.
한국에서는 나름대로 잘 나갔다는 사람도 이민을 오면 현지 언어가 될 때까지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눈치코치로 대충 짐작해서 맹하게 살아야 한다.
심지어 상대방이 욕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 머쓱해서 ‘그라시아스.’라고 대답하고 도망치듯이 얼른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여학생 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라틴에 유학 왔다가 뻬루아노와 결혼해 한국 문학을 라틴 문화권에 전하는 의지의 한국 여인이 있다.
그녀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지만 꿈을 이루는 것은 원래 오래 걸리는 일 아니겠는가?
K 양은 그 나이 또래의 많은 소녀가 그러했듯이 문학소녀였다.
시를 외우고 문학작품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가는 꿈 많은 소녀였다.
많은 책을 읽다가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떼스의 돈 끼호떼를 읽고 ‘...... morir cuerdo y vivir loco. (...... 미쳐서 살고 깨어서 죽었다.)’라는 Epitafio (묘비명)에서 머릿속에 무언가 번쩍이는 섬광 같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사람은 태어났다가 어차피 죽어가는 것인데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스페인 문학을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스페인 작가들의 글을 읽고 라틴 음악을 즐겨 듣는 여학생이 되었다고 했다.
집에도 많은 책이 있었으나 스페인 문학에 관한 책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도서실을 이용해 라틴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다가 번역이 애매한 부분이 종종 눈에 띄어 원어로 된 책을 읽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녀의 꿈은 명확해졌다.
스페인어를 제대로 공부해서 라틴 문화를 배우고 그 라틴 문화권에 한국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일을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페인어를 전공하였고 스페인 문학의 한국어 번역이 많이 미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본인이 직접 스페인어를 번역하고 우리 문학을 스페인 문화권에 알리는 일을 해보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라틴 문화를 제대로 더 배우고 싶어 기어코 라틴 나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중 역시 뻬루에서 유학 온 남학생과 서클에서 친하게 지냈다고 했다.
세월이 지나 꿈 많던 문학소녀는 나이를 먹고 그녀의 꿈도 세월만큼이나 영글어 갔다.
그리고 그녀는 꿈이 있었기에 유학 생활의 어려움과 외로움도 능히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남편이 된 그 남학생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어로 된 책을 번역하여 한국의 출판사를 알아보았으나 잘 팔리지 않는 스페인 문화권의 책을 선뜻 출판해 줄 곳은 별로 없어서 거절을 많이 당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결혼까지 하게 된 뻬루아노와 스페인어로 공동 번역한 El Canto de la Espada(칼의 노래) 가 스페인 최대 서점 체인인 Casa de libro에서 넉 달간 베스트셀러 20위권 안에 들었다.
그리고 스페인 바스크 공영 TV인 EITB에서 금주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결과로 결국 부부가 한국 문학 번역 대상까지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상식 때 그녀의 간곡한 출판 제의를 거절했던 출판인들도 참석했음은 물론이고…….
이제 그녀의 꿈은 무르익어 많은 한국 문학 작품이 스페인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많은 라틴 국가의 서점에 그녀의 손을 거쳐 번역 되어 팔리고 있다고 한다.
꿈은 이루어지는가?
내 꿈을 그저 꿈으로만 만들게 하려는 모든 것들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부정적인 생각들이 그렇다.
혹시 나는 내 아이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꿈을 가로막는 부정적인 사람은 아닐까?
글쓴이도 이제부터라도 스페인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언젠가는 스페인어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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