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에서 항해하는 선박
그대 그리고 나
잔잔한 지중해의 푸른 물살을 헤치며 오늘도 "NAMMI SPIRIT' 호는 수에즈 운하를 향해 거침없이 앞으로 가고 있었다.
넓은 바다를 항해할 때는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일상의 연속이다.
역시 때 되면 밥 먹어야지.
“어이, 조 국장. 식사하러 갑시다.”
다시 새롭게 다가오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읽고 있는데 캡틴이 통신실 앞을 지나가면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먼저 가십시오. 금방 내려갈게요.”
보던 부분을 마저 보고 갈 생각에 얼른 대답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전화가 울렸다.
“어이, 국장! 식사 시간이 끝나 가는데 혼자 뭐해요? 얼른 와서 밥 먹지 않고...”
“맛있게 드십시오.”
식당 문을 열며 인사를 하자 1항사가 반갑게 대꾸했다.
“다 먹었는데 뭘 맛있게 먹으라고, 꼭 전화하게 만들어야겠소?”
“네, 미안해요. 보던 게 있어서...”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자 캡틴이 웃으며 반겼다.
“어이, 국장! 기다렸다카이. 얼른 식사하면서 중곡동인가 화양동인가 그 아가씨하고 재미있던 이야기 좀 더 해보소. 그래 아직도 졸다가 내리고 비몽사몽간에 타고 있나?”
사관식당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안 선장님과 내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밥을 먹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아, 거기 아세요? 강촌이라고.”
“햐, 서울은 좋네, 산~넘어 강촌도 있고.”
오지랖 넓은 1항사의 말에 캡틴이 웃으면서 말했다.
“또 시작이다, 1항사! 아, 자네가 잘 가던 청량리 588에서 기차 타고 가는 데잖아.”
모두들 킥킥대는데 1항사의 눈이 더 커지며 반문했다.
“저 세 번밖에 안 갔는데요?”
이번에는 오전 당직을 마치고 3항사와 같이 식사하던 3기사가 넘어갔다.
아이고, 어쩌나.
입안에서 씹고 있던 음식이 3항사 앞으로 튀었네.
“과 친구들이 일요일에 강촌에 놀러가자고 해서 청량리 역 시계탑 앞에서 모여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죠.”
“그 아가씨도 같이 가는 거지?”
기관장이 싱긋이 웃으며 물었다.
“아뇨. 같이 가면 피곤해서 제가 빼자고 했죠.”
“아니 그러면 재미없잖소.”
1기사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묻자 1항사도 거들었다.
“어이, 국장. 우리 나이쯤 되면 거 뭣이냐 방은 있는데 사랑이 없단 말이야. 그런데 총각들은 방만 있고 사람이 없잖우. 아, 그런 얘기 좀 해보소.”
캡틴이 폭소를 터트리며 1항사를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어, 1항사! 오늘 말 되네. 그거 어디서 퍼왔는데?”
“와 그러십니까, 선장님? 저도 총각 때 한 사랑했다니까요.”
1항사의 말에 모두 웃고 있는데 이어지는 캡틴의 말이 더 걸작이었다.
“그래서 거기를 세 번이나 갔어?”
이번에는 3항사가 먹던 것이 튈까봐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댔다.
나도 웃음을 참으며 계속 말했다.
“아, 들어보세요. 내 참 기가 차서, 친구들이 대충 다 온 거 같아서 열차를 타러 우리들끼리 이야기하면서 걸어가는데 누가 뒤에서 제 엉덩이를 걷어차는 거에요. 그래서 ‘아니 어떤 우라질 놈이’ 하고 뒤돌아보니 이 웬수가 숨이 목에까지 차가지고 ‘야, 짜샤! 니가 나만 빼고 가자고 그랬지!’ 하는 거 아니겠어요. 전화를 했는지 어째 알고 쫓아온 거에요.”
“그래서 뭐라고 그랬대?”
기관장이 물었다.
“뭐라 그러긴요. 그 사나운 가시나를 어떻게 해 볼 재간이 있어야죠. 사실이 그러니 대꾸도 못하고 김 파악 새서 열차 구석에 처박혀 있으니 아름다운 북한강 경치가 눈에 들어옵니까?”
“아니, 지금 연애를 하는 거요, 뭐요? 빤쓰 색깔도 모르면서...”
1항사의 심드렁한 말에 모두 자지러졌다.
“구석에 처박혀 먼 산만 보고 있는 게 짠했는지 이 웬수가 기타치고 노래 부르며 놀다가 저한테 옵디다.”
기관장이 혀를 차며 거들었다.
“하이고, 무슨 그런 말괄량이도 다 있지 다 큰 처녀가 총각 엉덩이를 발로 차고 자기도 미안했겠지.”
“네? 그게 아니고 남희 씨가 저한테 오더니 ‘야, 짜샤! 왜 기분 나쁘냐? 감정 있으면 말 해~. 말하라고~!’ 하는 거예요. 나 참! 말로는 도저히 못해보겠고, 그런데 갑자기 제 장난기가 발동하더라고요. 가만, 물 좀 마시고...”
컵에 물을 따르고 있자 캡틴이 웃으면서 한 마디 했다.
“애고. 다음 항차 국장 연가가면 심심해서 우찌 사노.”
“그래도 빨리 이 배에서 내려야 남희 씨가 있을 독일 가는 배를 골라 탈 거 아니에요? 우리 배는 독일 가기가 쉽지 않을 텐데.”
기관장이 웃으며 거들었다.
“‘야야, 나미야! 그만하고 앉아 봐. 내가 손금 봐 줄게.’ 하니까 그 사나운 것이 ‘너 또 사기 치려고 그러지.’ 하면서도 호기심에 주섬주섬 앉더라고요.”
“햐, 손금도 보나, 국장이?”
1기사가 묻자 나는 침을 튀겨가며 말을 계속 했다.
“아, 일단 들어보세요. 턱하니 예쁜 손을 제 코 앞에 내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야, 이런 손금 처음 보네.’ 그랬죠. 사실 그때 처음으로 남의 손금을 보는 거니까 거짓말은 아니죠.”
“그랬더니?”
아무튼 군대나 배에서 여자 이야기만 나오면 저렇게 눈들이 초롱초롱 하다니까…
“그리고 ‘야, 나미야! 너 무대나 카메라 빨 받고 살 팔잔데.’ 그랬죠.”
“아니, 그걸 어떻게...”
캡틴이 묻자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 조금 죄송하게(?) 생긴 아가씨는 공부나 재물 쪽 집어주면 되고 반반하게 생긴 애들은 그쪽으로 얘기하면 다 넘어가게 돼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거울하고 친하게 살았을 건데...”
조용히 듣고 있던 1기사가 또 물었다.
“아니, 국장. 정말 손금 공부하긴 한 거요?”
“아뇨. 손이 차거나 색깔이 안 좋으면 당연히 건강에 문제가 있을 거고, 언제는 발금도 볼 줄 안다니까 아가씨들 죄다 제 앞에서 양말 벗고 달려들더라니까요.”
모두들 책상을 치고 손뼉을 치며 웃는데 1항사의 말이 더 웃겼다.
“빤쓰는 어캐 벗기는데...?”
모두 자지러져 넘어가고 ‘NAMMI SPIRIT’ 호는 오늘도 지중해의 잔잔한 파도를 헤치며 앞으로 앞으로~~~.
알젠의 봄 중곡동의 남희... 강촌가는 경춘선... 부에노의 항해일지는 양말 벗구 나면 독일로 가는 것일 까... 글을 읽다 보면 다음이 궁금해지거든요~ 하하하... 04-25
세인트 남자들만의 세계라서 그런지 걸쭉한 입담이 너무 재밌습니다~! ㅎㅎㅎ 04-25
바다 ㅎㅎ 오늘도 재미있어요...!! 04-25
saci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부에노님이 양말까지는 잘 할 것 같은 데... 1항사의 기대는 채워주지 못할 것만 같은... 시나몬 넣은 와인 마시고 독일에서도 졸다 깨다 남희 가 뽀뽀해주기만 기다리다... 엉덩이 걷어채이고 오는 것은 아닌지...... 04-25
saci 그리고 왜 몰래 강촌은 갑니까? 걸리면 터질 것 알면서도 참...... 그리고는 구석에 찌그러져 있기는... 나라도 정말 딱 남희씨 같이 했겠네...... 꼭 맞을 짓만 골라서 했군요... 젊은 부에노는... 그래도 남희씨는 그런 부에노에게도 금방 깔깔거렸겠죠... 04-25
momo0506 그 시절 종강하기 무섭게 청량리 역에서 고래(?) 잡으러 야간 열차 타고 동해바다로 떠나던 생각이... ㅎㅎㅎ 04-25
saci 아... 그래요... 고래잡으러...... 난 술 마신 새벽이면... 경춘선 타고 아무데나 내리던 생각... 그리도 마냥 천천히 가던... 완행열차... 조약돌...... 04-25
알젠의 봄 saci님... 우하하... 이러다가 "부에노의 강촌 가는 경춘선"으루 제목 바뀌어 질까봐 걱정되요. 강촌... 밤섬... MT... 빠질 수 없는 두꺼비... 고래잡이처럼 마구 생각나네요... 깔깔~깔... 다~들 경춘선의 사연이 넘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 떠나자! 고래잡으러~~~ 04-25
알젠의 봄 이러다간.."부에노의 항해일지" 보다 "부에노의 항해일지 댓글로~"가 더 잘 팔리면 어쩌지요??? ㅋㅋㅋ 04-25
Moroti y Hunghu 헉 부에노임 그 빤쓰 는????????????? 내가 넘 앞선나여. 급해서리 빨리 날려주세염. 건강 하세염. 화팅! 04-25
saci 알젠의 봄님... 조금 토마토님께 미안한 생각이... 하지만... 토마토님은 알헨 친구들과 이런 것을 나누겠죠? 우리 때는... 수업 보다는 써클이, 도서관보다는 주점이... 돈 보다는 이상이... 취직 보다는 사랑이... 그랬어도 별 지장 받지 않던 시대였죠...... 고맙게도... 04-26
알젠의 봄 그렇죠. 주점에서 밤새 얘기하면서 논쟁을 하기도 하고 부둥켜 안으며 사라를 노래하고 음악에 젖어 버리고요. 어떨 땐 수업도 빼먹고 최류탄을 마시던 일들... 그러나 이 역시 다문화주의적으로 서로 부족하고 빠뜨린 부분을 이렇게 서로 공유하며 라틴방에서 04-26
알젠의 봄 진지하게 나타낸다고 보지요. 토마토님의 용감성(?)이 있기에 글도 넘 잘 쓰시쟎아요? 오히려 토마토님께선 우리에게 미안케 생각하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토마토님은 멋쟁이니깐...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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