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두에 접안해 있는 화물선
진수성찬과 못 말리는 김치찌개
나는 윙 브리지에 서 있는 캡틴에게 고개를 꾸벅하며 손을 한번 흔들고 0.5초 만에 넥타이를 휘날리며 갱웨이를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두 팔을 벌리고 활짝 웃고 있는 남희를 얼싸안았다.
이렇게 만나기 위해 몇 년이 걸렸던가?
항상 아스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 같이 환상 속에 살아있던 그녀.
이렇게 안으니까 그저 품 안에서 가냘프게 떨고 있는데...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남희가 나를 약간 밀치며 말했다.
“아, 숨 막혀... 은여바, 너, 여자 처음 안아보니?”
“응, 옷 입고 있는 여자 안아보는 건 나미가 처음이야.”
“그래, 나도 처음이야. 그런데 선원들이 다 쳐다본다.”
“사랑이라면 대낮에도 부끄러울 수 없다며?”
“은여비, 키일 운하는 아니지만 약속대로 뽀...”
순간 남희의 말을 내 입으로 막아버렸다.
한쪽에서 흥미롭게 지켜보던 네덜란드 경찰들이 한쪽 눈을 찡긋하고 어깨를 움찔하며 경찰차에 탔다.
남희는 한 손으로 나를 약간 밀어내고 경찰에게 다른 손을 흔들며 말했다.
“Thank you so much, Poly! Bye!”
어느새 색바랜 작업복을 하얀 사관 정복과 금테 모자로 바꿔 입은 젊은 신사들이 갱웨이 앞에 이 열로 섰다.
군기반장 격인 1등 항해사가 남희에게 거수경례하면서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대단하신 남희 씨. 본 ‘HAPPY NINA’ 호의 전 승조원은 남희 씨가 저희 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머지 다른 사관들도 남희에게 거수경례했다.
활짝 웃으며 한 손으로 긴 머리를 걷어 올리고 묵례와 눈웃음으로 답하는 남희.
하얀 덧니가 참 아름답다.
나는 엉겁결에 엉거주춤 누구한테 인사하는 건지 같이 고개를 숙이고.
갑판 위에 있는 선원들은 손뼉을 치고 모자를 흔들며 괴성을 질렀다.
휘익, 휘리릭~ 휘파람 소리도 들리고.
윙 브리지에서 안 선장님과 기관장이 파이프를 손에 들고 미소 지으며 내려다보고 한마디 했다.
“어이, 국장! 아가씨 배도 구경시켜드리고 식사하라고 하소. 시장하시겠다. 나머지 선원들은 얼른 선창 열고 하역 준비들 해요.”
이어 1항사가 말했다.
“국장님, 아가씨하고 먼저 올라가소. 난 확인할 게 있어서리.”
“네?”
나와 남희는 눈을 마주치고 동시에 웃었다.
“푸하하하...”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양 손바닥을 편 채 싱긋이 웃는 1항사, 그리고 폭소를 터뜨리는 젊은 사관들.
“와우, 생각보다 배가 엄청 크다.”
남희의 탄성에 1항사가 대답했다.
“이건 유조선에 비하면 별거 아닙니다. 이 배를 움직이려면 말 이만 마리 이상이 끄는 동력이 필요하죠.”
“어머머! 정말 대단하네요. 그런데 저분이 저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으신 분이세요? 어쩌나, 급히 나오느라 보여드릴 게 없는데.”
남희의 허를 찌르는 역습에 이번에는 1항사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며 대답할 말을 못 찾고 쩔쩔맸다.
나와 동갑내기인 3항사는 너무 웃다가 흘러내린 눈물과 얼떨결에 튀어나온 콧물을 닦으려고 손수건을 꺼냈다.
브리지에 올라온 남희는 로테르담 항구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와우, 디게 멋있다.”
윙 브리지에 서 있던 캡틴이 미소와 함께 양팔을 벌려 남희를 반기며 가볍게 안아주었다.
“아가씨, 듣던 대로 정말 대단해. 독일에서나 볼 줄 알았더니 용감하게 여기까지 경찰 패트롤카 타고 나타나고. 조 국장이 반할만하게 정말 어디 나무랄 데가 하나도 없군.”
반갑게 인사하는 캡틴의 말에 남희가 호들갑을 떨며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안 선장님, 정말 멋있어요. 마도로스는 다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El condor pasa’, ‘La Bamba’ 이런 음악도 좋아하시고 저희를 위해 ‘기쁨의 찬가’도 울려주시다니, 안 선장님 덕분에 정말 행복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주방에서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식당으로 내려오라는 전갈이 왔다.
모두 식당으로 향했다.
남희가 멀리서 왔다고 이것저것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다.
불고기, LA갈비, 잡채, 탕수육, 빠에야, 아귀찜, 마구로 회 그리고 반찬과 과일 몇 가지 더...
또 몇 번째인지 모를 남희의 탄성!
눈물을 글썽거리며 모두 들으라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와우, 넘 넘 행복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모두...”
그리고 이어지는 말.
“훌쩍~ 근데 김치찌개가 안 보인다.”
하얀천사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어서 남미에서도 재결합하셔야 하는데... 그래야 홀애비 생할 면할 텐데. 이가 서말이라잖아요. 모르지 뭐 또 빨래 줄이려고 요즘도 그러는지... ㅎㅎㅎ 05-05
하얀천사 쓰다보니 마나님 닉으로...... 참 전화 번호 좀 부탁합니다. 윈래 독수라라 답답해서... 오프라인 체질이라... 좋은 하루 되십시오. 05-05
saci 나처럼 머리 안 돌아가는 사람은... 부에노 작가님 특유의 유머를 이해하려면...... 참 꼼꼼이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처음 읽을 때... 한두 군데 웃고... 두 번째 읽을 때 또 다른 곳에서 배 쥐고... 세 번째쯤에는 이제 제대로 이해하며... 의자에서 떨어지게 깔깔댄다. 05-05
saci 그냥... 우리의 댓글을 주어서 마구 흘려서 쓴 것처럼 보이는 곳곳에...... 얼마나 치밀한 복선이 깔리고... 의미가 담겨 있는지... 정말 많이 놀라고...... 부에노님의 글은 재미있고... 쉽게 읽히고... 그러면서도...... 늘 다음이 기다려지는 흥미를 유발하고... 그러면서도.. 05-05
saci 그 안에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투지, 역경, 사나이들의 의리, 배려, 우정... 그래... 물론 사랑...... 그러나... 항상 조심해야한다... 언제 목동님의 재료가 될지 모르니까...... 05-05
saci 거 봐... 다 필요없지...... 김치찌개 먹고 싶다는데... 안 주니까... 울지... 삭힌 그 김치는 어디 간 거지? 05-05
지성 날이 날인지라 차분히 읽고 즐거운 마음으로 갑니당, 행님. ^^ 진수성찬에... 김치찌개가 얼마나 그리웠으면... ㅎㅎㅎㅎㅎ 빨리 해주세요. ^^ 05-05
RailArt박우물 옷 입은 여자 처음 안아본다. ㅋㅋㅋㅋㅋㅋ 05-05
별지면-내리는비 확인할 것이 있어서리~ ... 후후 어떻게 이 별은 요른 것만 궁금할까요? 빤쥬 빌려주셨어요? 역시나 바람은 안 불었나보군요. 그래서 하늘이 돕는다는 말이 나왔나 봐요. 부에노 님 하늘이 축복한 그 인연... 그들의 뽀뽀는 어떻게 상상함 되나요? 곤 위드 더 윈, 사관과 신사? 05-05
별지면-내리는비 카사블랑카...? 아무튼 차리한 뽀~ 였겠죠... 근데 전 빠에야와 아구찜에 눈이 가네요. 아구찜 못 먹어 본 지가 몇 년인지... saci님도 하이~ 05-05
Paulo 부에노님 이야기 은근히 재미있습니다. 05-05
David 하여튼, 영감님 주책 떠는 바람에 아무 짓도 안 한 내가 다 얼굴이 달아 오르네요... (근데, 영감님 피아노는 언제 배웠어요? 진짜 잘 치신당~~~) ^^; 05-05
알젠의 봄 조용하고 잔잔하게 들리는 발라드... 봄을 느끼며 많이 듣던 곡인데... 부에노님은 어찌 그리 사람 마음을 잘 아시는지... 그나저나 다시 첨부터 읽을랍니다... ㅠ.ㅠ 05-05
멋쟁이 리차드 클라이더만인가요? 이 사람 연주곡 중 스페니쉬커휘 전에 아가씨와 건달들 공연할때 간주로 써먹었는데. 오랜만에 듣네요.흠.............. 다시 청춘으로 날 되돌려줘요~~~~~~~ 05-05
멋쟁이 예약한 여행기는 저와 아들의 공동 게으름으로 인해 매월 1회 연재가 될거같은 암울 한 기분이 도네요. 일단 부에노님의 인기가 좀 식으면 그때나 올려 볼까나.. 지금은 올려봐야 별 인기가 없을듯 ㅎㅎㅎㅎㅎㅎㅎ 부에노 형님 건배요.(맥주한잔중ㅎㅎ) 05-05
saci 별님....빠예야와 아구찜...그리고 콩나물...그것..제가 부에노님에게 해달라는 음식이 었는 데....언젠가 우루과이가면....아마 우리 먹이고 싶은 음식을 저기에 저렇게 쓰셨 겠지요......나두 그 중..아구찜이 제일 그리운 데.... 05-05
워렌버팡 짝짝짝짝~~~~^^ 05-05
세인트 축하드립니다~~~이거 야말로 진정한 로맨스 네요.^^ 05-05
아카페 이 음악을 올려주신 분은 사람 마음까지도 보는 투시력이 있나 보네요.리차드 클라이 더만 이 피아노곡, 세미 클레식이라고 해야 하나요?? 고딩 졸업후 정말 테잎 늘어날 정도로 들었는데 존바에즈곡과 함께....존 바에즈 곡이 올라 왔을때.... 05-05
아카페 전 넘 놀라 넘어질뻔...레코드 가게 다 뒤져도 그게 없었거든요. 05-05
부에노 피곤zz 님, 아이디 바꿨네요. 이제 자요~~~ 자... 팔 벼게... 굿 나잇... 05-06
- 지심행
- 2007.05.05 11:41
- 부에노
- 2007.05.05 13:17
애고, 누나... 여그까지 오셨어라... 고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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