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르꼬마르 해변에서 달리고 있는 페루아나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며
요즘 집 앞 페루 뻰따고니또(국방성) 담 길을 뛰기 시작했다.
한 바퀴 돌면 정확히 4.1Km이다.
어떤 날은 라르꼬마르 해변 길을 뛰기도 한다.
글쓴이는 한 이십여 년 간 조깅을 했었다.
배를 탈 때는 정말 하루도 빠짐 없이 달렸었다.
항해하는 배 갑판 위에서 뛰었고 정박중에는 부두에서 뛰었다.
얼마나 뛰기에 중독 되었는지 비바람과 파도가 심해서 갑판 위를 못 나갈 것 같으면 하다 못해 후갑판에서 줄넘기라도 한 오천 번은 넘었고 귀국 길에 호텔에 묵을 때도 뛰었으니 말이다.
전에 영삼이 성님은 페루 국빈 방문 중에 조깅한다고 해서 사진 멋지게 박았지만 호텔 주위 길을 막아 출근하는 페루아노들의 원성을 산 일화도 있었다.
달리기를 언제부터 했을까?
중학교 3학년 때 동숭동에 있던 서울대학교에 신문을 돌린 적이 있었다.
한 130부 정도 되었을까?
새벽 4시 반쯤 일어나 신문 보급소에 가면 잉크 냄새가 진동하는 막 배달 되어온 신문 뭉치에 총무나 나이 많은 형들이 광고전단을 끼워놓는 작업을 하고 있고 나는 내가 배달해야 할 신문을 받아 문리대 쪽으로 뛰어가서 의대에서 끝났다.
처음엔 1시간 반 정도 걸리던 것이 나중엔 주력이 좋아져서 30분이면 돌렸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입학시험에 체력장이란 것이 생겼다.
여러 가지 종목 중에 오래 달리기가 있었는데 천 미터를 3분 30초에 들어오면 만점이었던가?
학교 운동장 200미터 트랙을 5바퀴 도는데 친구들 중에 낙오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었다.
지금 기억에 그걸 3분 11초에 들어왔다.
뭐 잘 뛴 거지.
그런데 육상 선수였던 친구들은 2분 30초 대에 들어왔다.
우리는 뛰고 나면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가슴이 엄청 따가워 숨쉬기도 힘든데 반해 선수들은 말짱했다.
나는 그때 남들 다 하는 태권도를 5년째 하고 있던 유단자였고 매일 새벽 신문을 돌리면서 단련이 되었는데 말이다.
그 후 군대 가니 매일 아침 점호 때 구보를 했다.
특별한 일 없으면 추우나 더우나 악쓰기 삼 창하고 웃통 벗고 전우들과 연병장을 한두 바퀴 돌았다.
그리고 매 달 전투 체력의 날엔 점심 식사로 건빵 한 봉지 먹고 군 사령부 내 전 병사들이 30Kg 완전군장하고 부대별로 일정한 간격으로 대구 시내 만촌동에서 10Km 구보를 했다.
완전군장하고 시내를 달릴 땐 정말 신났다.
부대 밖을 나갈 일이 별로 없는 사병들이 모처럼 여군이 아닌 화사한 민간인 아가씨나 여학생들을 볼 수 있는 기회니까...
그런데 한 병사라도 낙오하면 그 부대 병사들은 모두 혹독한 얼차려 훈련으로 거의 죽는 거다.
훈련은 실전 같이 하는 게 생활화 되어 있는 평화시 군대에서 빨리 들어오는 것 보다 한 사람의 낙오 없이 들어오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매일 새벽 구보로 훈련을 한 것이고...
아무튼 그렇게 구보를 하다가 호흡조절을 잘못한 전우가 쓰러지면 그 부대는 난리가 났다.
고통을 못 견디고 쓰러진 병사는 처음엔 중대장이나 선임하사가 민간인이 보거나 말거나 정신 차리라고 군화발로 걷어 찼다.
"이 새끼, 군기가 빠져가지고... 안 죽을 거 같으면 얼른 일어나 뛰어 임마. 너 하나 때문에 우리 부대 줄초상 난단 말이야."
겨우 정신 차리고 일어나 뛰기 시작하면 그 전우의 무거운 군장과 철모며 총을 다른 전우들이 받아 들고 같이 뛴다.
눈동자가 맛이 가고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는 그 병사는 구보 대열 가운데로 들어가 옆 전우들의 부축을 받고 수통의 물을 얼굴에 끼얹으며 같이 뛰게 된다.
뒤따라 오는 군 앰블런스에서는 경광등을 켜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그런 걸 지켜보는 민간인들은 처음 구타 장면에 말리지도 못하고 혀를 차다가 퍼졌던 병사가 정신차리고 다시 뛰기 시작하면 모두 눈시울을 붉히며 격려의 박수를 쳐주었다.
지켜보는 이 중에 자기 가족이나 친척 중에 군대에 가 있거나 안 가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뛰는 우리도 가슴이 벅차 오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 우리 부대가 들어오는 속도가 48분 대였다.
맨 몸으로 뛰는 일반 육상 선수들이 30분 대를 끊던가?
100미터를 18초 대에 10Km를 뛰면 30분 걸린다.
여군들은 1시간 반 정도 걸렸나?
물론 여군들은 철모도 안 쓰고 군장도 가벼운데다가 총도 작았지만 낙오된 여군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글쓴이가 3년 가까이 군 복무하면서 앰블런스에 실려간 병사를 한 명도 보질 못했다.
그 때 군인들은 고문관은 있었어도 전우애가 강했을까?
참, 군대에서 점호나 내무반에서 얼차려 훈련 받을 때 '침상 끝 선에 정렬! 삼 선에 정렬!' 하며 발 끝을 맞추지 않았던가?
그런데 여군들은 '유방 끝 선에 정렬!' 했다던가?
야그가 또 옆으로 샜네... ㅎ
(계속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 상륙 작전, 광양 '맛있는 호도과자' 이야기 (0) | 2008.11.30 |
---|---|
광양 맛있는 호도과자의 전설 (0) | 2008.11.30 |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밥 도둑, 생선 조림 (0) | 2008.11.10 |
세비체 만드는 방법 (0) | 2008.11.09 |
팔보채 삼십 분만에 만드는 방법 (0) | 2008.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