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도과자 기계
광양 맛있는 호도과자의 전설
"엄마! 저 아저씨 나쁜 사람이야."
한 꼬마가 엄마 손을 잡고 호도과자 이동 차량에 둘러 서있는 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와 울먹이며 말했다.
배 내리고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열심히 호도과자를 굽고 있다가 무슨 영문인 줄 모르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 손으로는 호도과자 기계를 돌리며 그 아이를 쳐다봤다.
'아까부터 기다렸는데 난 안 주고 다른 어른한테만 주는 거야, 씨이.' 하며 입이 삐죽 나와서 말하는 거였다.
얼른 상황 파악을 한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얘, 인석아. 말을 해야 알지. 아무 말 안 하고 서 있으니 아저씨가 몰랐다. 미안하다. 손님들! 이 꼬마 먼저 줘도 되겠지요?"
순천 연향동 동부상설시장 시공을 앞두고 연예인들 몇 명 불러다 허허벌판에서 기념행사를 하는데 혼자 좌판을 벌렸다가 그날 팔 호도과자를 두어 시간 만에 다 팔아버렸다.
"저런 호로자식이 다 있나? 누군 돈이 없어 한 봉지만 사가나. 기다리는 사람 미안해서 그러지."
진주 촉석루 들어가는 길목, 극장이 네 군데가 몰려있는 목 좋은 곳에서 일요일 좌판을 벌려놓으니 삼삼오오 영화도 볼 겸 촉석루 쪽으로 휴일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내 호도과자 냄새를 맡고 차 주위에 몰려 기다리던 사람 중 한 아저씨가, 금방 두 봉지를 사가지고 나간 사람이 멀리 가자 불평하는 것이었다.
잠시 후, 극장 기도라는 건장한 젊은 아저씨가 인파를 헤집고 들어와 '와~, 손님 너무 많네. 그것 맛 좀 봅시다. 극장 손님들이 한 봉지씩 들고 들어오면서 먹는데 냄새도 좋고 아주 맛있어 보입디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주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째려보는 눈초리에 찔끔하고, 침을 흘리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 넉살 좋은 젊은이가 '다음은 아가씨 차례지요? 그 다음 저 아주머니, 그리고 다음이 나요.'라며 장내 정리를 해주었다.
토, 일요일 진주에만 오면 얼마나 바빴는지 담배 한 대 필 시간도 없이 점심도 쫄쫄 굶고 오후 늦으막이 준비된 호도과자 반죽을 다 구워 팔고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광양으로 돌아갔다.
매상은 26만 원 정도.
한 봉지에 호도과자 18~20개를 담아 천 원에 파는 걸 260봉지를 팔았다는 거다.
5,200개를 구워 팔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럼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밀가루 장사가 많이 남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재료비, 봉투 값, 기계와 차에 들어가는 가스비와 톨게이트 비용 다 빼고도 무려 85프로가 남았다.
그런데 난 팔면 파는 대로 다 남았다.
왜 그런고 하니 내가 만드는 호도과자가 맛있다고 소문 나서 두 사람이 내 반죽을 사갔다.
그 재료비가 인건비 빼고 한 말통에 13,000원 정도 들었는데 그걸 남들 보다 5,000원 싼 25,000원에 납품했으니 내가 하루 두 통 구워 파는 것은 다 남는다는 이야기다.
사실 나 말고도 당시 호도과자를 파는 노점들이 여러 군데 있었으나 내가 만든 호도과자는 멀리서도 바닐라 향의 고소한 냄새가 나면서 맛이 좋아 잘 팔렸다.
특히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은 그 냄새가 더 멀리 날아가 매상이 더 좋았다.
배 타던 사람이 왠 뜬금없이 호도과자 장사냐고 의아해 하실 분들이 있을 텐데 사람 사는 것이 이리 재미가 있다.
배 타는 사람 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사회 물정을 잘 모르는 선원 출신들이 전업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88년도 신혼 때 부산 청학동에 집을 하나 사서 일 년 만에 팔았는데 딱 천만 원이 남았었다.
그리고 주식이 처음으로 1,000포인트를 넘기기 직전에 조금 투자했었는데 동남아 한 항차 40일 하고 오면 월급 보다 더 벌었다.
그래서 돈은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고 육상에 있다는 것을 체득하고 과감히 배를 내렸다.
당시 부산 동삼동에 신혼 보금자리가 있었는데 버스, 지하철을 갈아 타고 연산동 부동산 사무실에 출근하며 드디어 육상 근무라는 것을 시작했다.
부동산 사무실에 다니면서, 전에 재미 봤던 주택 건설업자에게 이층 단독 주택 하나 더 분양 받기로 하고 기다리면서, 증권사에도 매일 나가보고, 한 바다의 거친 파도 밭을 떠나 육상에서 신혼 살림에 세상 부러운 것 없이 재미있게 살았다.
퇴근할 땐 버스에서 내려 언덕 아래 있던 집까지 요란한 구두발자국 소리와 함께 넥타이를 휘날리며 얼마나 빨리 뛰어 내려갔는지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다나.
"새 신랑 퇴근하는갑다..."
그런데 웬걸, 세상사 만만한 게 어디 있던가?
나만은 항상 돈이 잘 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착각이었다는 것을 7개월 만에 여지 없이 깨닫게 되었다.
말로만 이야기가 되던 이층 집은 짓기도 전에 설계사들의 파업으로 지지부진한데다가 자재비가 오르고 있어서 처음 이야기하던 분양가로는 택도 없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주식도 연말에 1,070포인트까지 올라가 주식 전광판이 온통 빨간색 일색이었다가 해가 바뀌니 우울한 녹색이 주도했다.
누군 반 토막이 됐다느니, 신문에는 주식 실패를 비관하여 누가 자살했다느니 하는 안 좋은 소식이 난무했다.
나는 간이 작아 남의 돈 안 빌리고 내 것만 투자해서 다행히 큰 손실은 없었지만 쉽게 번 돈이 힘이 없다고 집 팔아 남은 돈은 고사하고 원금까지 어디 갔는지 난감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부동산 사무실 나가면서 7개월 동안 번 것이 딱 42만 원.
그것도 내가 노력한 것이 아니고 사무실 직원들이 불쌍하다고 임자 없이 굴러들어온 거래 건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한 걸로 만들어 준 거다.
그러니 그 돈도 다 가져갈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직원들에게 밥 사고 술 사고...
그런데 아직 아이는 없었지만 그 7개월 동안 지출은?
이거 환장할 일 아닌가?
벌어도 시원찮은 데 만 날 까먹고 있으니...
그래서 선박회사에 근무하는 배 탈 때 알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마침 급료 좋은 일본 Tokyo Marine 케미칼 탱커에 통신장 교대 자리가 났으니 나갈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남은 돈으로 영도에 30평짜리 아파트 하나 계약하고 눈물을 머금으며 다시 배를 타러 나갔다.
1차 상륙 작전 실패.
이거 포비즈 님이 순천만 철새 도래지 사진을 올려주어 광양에서 호도과자 장사하던 이야기를 쓰다 보니 또 길어지네.
다들 바쁘실 텐데 길면 지루하니까 다음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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