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잡초만 연구한 강병화 교수, 잡초는 없다
연구실에서 만난 '잡초 박사' 강병화 교수는 등산복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나는 잡초에 미친놈이오. 지금까지 3,800일을 잡초 씨앗을 받으러 돌아다녔어요. 세상 물정 모르고 종자만 받다 보니 어느새 정년이 왔어요. 슬라이드 사진을 15만 장 찍었고, 2005년부터는 디지털로 15만 장을 찍었어요. 잡초 사진을 보면 언제 어디서 찍은 것인지 알아요. 혼자서 자료 정리하는 게 어려워 슬라이드 10만 장은 버렸어요."
날짜를 어떻게 정확히 압니까?
"달력에 모두 기록해요. 한 달에 보름 이상을 다녀요."
그는 국내에서 수집할 수 있는 잡초 종자 1,700종을 수집했다.
이를 위해 7,000번이나 씨앗을 받았다.
씨앗을 구하려면 해당 식물의 정확한 서식지와 열매를 맺는 시기를 파악해야 한다.
"씨앗을 얻기 위해 평균 대여섯 번 가야 돼요. 몇 해에 걸쳐 계속 갈 때도 있어요. 지난 5월 경북 문경에서 처음으로 야생 '지치'를 발견했어요. 한 달 뒤 씨앗을 받기 위해 갔더니 덜 여물었어요. 다시 한 달 뒤에 가니 야생동물이 뜯어먹고 말았어요. 주변을 살펴보니 먹다 남은 가지가 있어 씨앗 9개를 채취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 누군가가 '종자 하나 달라'고 하면 내 살점을 떼주는 것 같아요."
고려대 농대를 졸업한 그는 농촌진흥청에서 3년 근무하다가 1979년 독일에 유학했다.
잡초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84년 고려대에 부임했다.
"잡초학을 전공하면 으레 제초제를 연구합니다. 농약 회사로부터 연구비도 지원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당시 대학에 부임해보니 실험실·실험장비·연구비도 없었어요. 낡은 카메라와 저울, 눈금자만 갖고 할 수 있는 걸 고민하다가 잡초 조사를 택한 거죠."
여건이 안 좋았지만 잡초를 조사하는 목적은 있었겠지요?
"국내에 어떤 잡초가 자라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었죠. 잡초가 다 자란 뒤에 제초제를 뿌리는 것보다, 어릴 때 그런 잡초를 알아보고 죽이는 게 경제적이죠.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지만, 잡초가 식물 자원이고 그 종자 보존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지 않고 산과 들로 다녔으니, 전국 구경은 잘했겠군요.
"일주일에 한 번 아침 강의를 끝내면 곧바로 차를 몰고 돌아다녔으니까요. 주행거리만 77만㎞니 요즘 기름값으로는 이억 오천만 원쯤 될 겁니다. 제주도에 스무 번은 갔어요. 바닷가에 나는 풀만 보고 다녔지, 관광지를 제대로 구경해본 적이 없어요."
꽃도 잡초다
그는 1998년 여름 강원도 인제 점봉산에서 말벌에 이마를 쏘여 눈 주위가 퉁퉁 부어올랐다. 출근하니, 동료 교수들이 '10만 원짜리 봉침을 맞았으니 점심을 사라.'고 했다고 한다.
2003년 월악산 송계계곡에서는 비 온 뒤 돌 위에서 몸을 말리던 독사를 밟아 물린 적이 있었다.
지난 5월 제주도 해변에서는 넘어져 엉덩이뼈를 다쳤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미친듯이 매달리게 된 이유는?
"그때까지 아무도 안 했고, 내가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거죠. 새로운 풀을 발견하면 엄청난 기쁨이 있어요. 독일에서 공부할 때 지도교수님이 '식물은 일요일이 없다.'며 만날 나와서 연구해요. 나도 하루도 쉬지 않고 풀과 종자만 생각했어요. 우리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대학 학장이 면서기보다 돈을 못 번다.'고 야단쳤는데, 내가 이렇게 살다 보니 시골집에 자주 못 내려갔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포도밭을 그냥 버려뒀는데 이상한 풀이 났다.'고 하면 보러가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내가 잡초학을 전공했지만 잡초는 없어요."
잡초가 없다니?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잡초일 뿐, 실제로는 잡초가 아니죠. 야생초, 들풀 모두 식물자원이지요. 사람이 농사짓고 생활하는 데 방해가 되면 잡초라 한 거죠."
잡초의 관점에서는 다를 수 있겠군요.
"그렇죠. 잡초들 나름대로는 다 존재의 의미가 있는 거죠."
장자(莊子)에 나오는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는 것의 쓸모있음)'이 연상됩니다.
"인간이 아직 다 몰라서 그렇지, 잡초가 자원이 되고 약이 됩니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어디서 나온지 압니까. 옛날에 흉년이 들고 먹을 게 없을 때는 사람들이 풀을 뜯어먹었어요. 볼일을 보면 항문이 찢어졌어요. 요사이는 그걸 웰빙식품이라며 먹어요. '방랑식객'이라는 사람은 그런 잡초로 강남에서 음식점을 하니까요."
잡초라도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분류돼 있겠지요.
"한의서에는 약초가 2,200종, 그중에 먹을 수 있는 식용은 1,500종이라고 나옵니다. 내가 거의 다 조사했어요. 한 번은 '반하'라는 식물에 혀를 댔다가 혼났어요. 아이들 피부에 대면 금방 부풀어오릅니다. 어떤 야생초든 저마다 독이 있어요. 독이 약효가 되지만, 많이 먹어선 안 좋아요."
오늘은 잡초가 중심이니까, 잡초도 아닌 식물은 뭐라 부르지요?
"흔히 말하는 '작물'이죠. 사람이 경제성을 따져 재배하는 벼·콩·보리 같은 거죠. 콩밭의 잡초는 콩과 생육이 비슷하고, 보리밭의 잡초는 보리와, 논에 나는 피도 벼와 생육이 비슷하죠. 같은 환경에서 잡초와 작물이 서로 경합합니다."
잡초 하면 떠오르는 것이 '질긴 생명력'인데.
"그래서 잡초 같은 인생이라는 말도 있죠."
작물과 경쟁하면 잡초가 이기는 이유가 뭡니까?
"잡초는 자연 상태로 있고, 작물은 우리가 원하는 부분을 좋게 발달시킨 거죠. 소위 벼의 육종은 벼이삭만 잘 키우는 겁니다. 다른 부위는 환경에 취약하죠. 그래서 농약과 비료가 필요한 겁니다. 하지만 잡초도 환경이 바뀌면 사라져요. 천하에 고약한 것은 가시박과 칡, 환삼덩굴 같은 덩굴식물입니다. 이놈들이 다른 잡초들을 다 죽이고 있어요."
덩굴식물도 나름대로 환경에 적응해 번식을 많이 한 것뿐입니다.
그 생명력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생태계를 교란하는 가시박
"다른 자생 식물들을 다 죽이니까요. 통상 잡초끼리는 경합하며 살아가는데, 이놈들은 모든 걸 덮어버려요. 내가 1990년 경기도 포천에서 '가시박'을 처음 발견했는데, 지금은 전국의 강변과 도로변에 다 퍼져 있어요. 4대강변의 자전거 길도 가시박 길이 될 겁니다. 과거에 국토개발을 하면서 절개면에 칡을 심으라고 했어요. 지금은 국토의 1.5%가 칡으로 덮여 있어요."
그는 자신의 고별강연에서도 가시박 제거를 역설했다.
가시박은 미국이 원산지인 1년생 덩굴식물이다.
지름 10㎝ 내외의 잎은 뭉툭한 별 모양이다.
줄기는 보통 4∼8m 내외로 자란다.
햇빛을 받기 위해 주변 들판과 나무들을 덮어버린다.
9월 말쯤 가시로 뒤덮인 열매를 맺는다.
시간이 지나면 생태계 안에서 자연 조절이 되지 않을까요?
"원산지인 미국과 일본에서는 가시박이 문제가 되지 않아요. 강원도 산골처럼 생태계가 보존된 데는 가시박이 못 들어가요. 가시박은 파괴된 땅, 햇볕이 나는 곳에 제일 먼저 들어가요. 4대강 준설토에 가시박이 퍼져 번식할 것입니다."
가시박은 자원식물이 될 수 없나요?
"환경부에서 해결책을 묻는 전화가 왔어요. 농담으로 '가시그라(비아그라)나 가시크림(화장품)을 만들어라.'고 했어요. 가시박은 소도 안 먹어요. 제초제를 쓰면 얼마간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다른 식물까지 죽입니다. 결국 사람이 지속적으로 뜯어내는 것 외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요."
교수님은 보이는 풀마다 이름을 압니까?
"남들은 핀 꽃을 보고 알지만, 나는 잎사귀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도 알아요. 소설가나 기자들이 '비무장지대를 가보니 이름없는 풀들이 많더라.'고 하는데, 말짱 거짓말이에요. 자기들이 이름을 모르는 거지. 다만 같은 풀이라도 지방마다 농민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를 때가 있어요."
솔직히 풀 이름을 다 안다는 게 힘듭니다.
"모든 식물은 관심이 있어야 보이고, 눈에 보여야 알게 됩니다. 생태계의 변화로 잡초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어요. 2005년 서울 양재천에서 자생하던 429종의 풀들이 5년 뒤에는 318종으로 감소했어요. 그만큼 우리의 식물자원을 잃었다는 뜻이오."
그가 채취한 잡초 씨앗은 바짝 말린 뒤 방부 처리해 영하 20도의 냉동 상태로 보관된다.
이렇게 보관된 씨앗은 수백 년이 지나도 싹을 틔울 수 있다고 한다.
그는 한때 정부 지원을 받고 종자은행을 운영했다.
하지만 5년 만에 지원이 끊겼다,
"정부 돈을 받으니 요구 조건이 많았어요. 보고서도 많이 써야 했지요. 그걸 모두 들어주면 내가 종자 수집할 여력이 없었어요. 그나마 지원이 끊겼을 때 낙담했죠. 그 시점 급성당뇨로 쓰러졌어요. 하지만 그게 기회가 됐어요. 그때까지 조사한 식물들을 정리할 시간을 갖게 됐으니까요."
2008년 그는 2,037종의 식물을 담은 1,300여쪽의 하드커버 3권짜리 '한국생약자원 생태도감'을 펴냈다.
사진 16,238컷은 개별 식물마다 씨앗에서 싹이 터서 자라고 꽃피고 열매 맺고 스러져가는 전 생애를 담았다.
"책값이 80만 원입니다. 어디서도 출판을 안 하려고 했어요. 살고 있는 아파트를 저당잡혀 이억 오천만 원을 빌려 출판사에 준 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주고 나머지는 갚아라'고 했지요. 출판은 됐는데 도서관에서도 비싸서 사질 않아요. 혹 한의사들이 관심을 보이도록 제목도 '생약자원'이라고 했는데…."
얼마나 팔렸습니까?
"그건 비밀이에요. 우리 마누라한테 맞아죽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책이니까 언젠가는 팔릴 거요."
나는 왜 살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종자 수집을 할 때 부인이 늘 동반한다면서요?
"집사람과는 삼천 일을 같이 돌아다녔어요. 대학원생과 다니면 불고기와 맥주를 사줘야 하는데, 내가 돈이 별로 없으니까 집사람은 라면을 먹어도 아무 말 안 하거든요. 사실 젊었을 때는 내가 바람피울까 봐 집사람이 따라왔는데, 지금은 집사람이 없으면 불편해요. 내 귀 역할까지 해주니까요."
이제야 밝히지만 강 교수는 대화할 때 보청기를 낀다.
지금껏 강의 하는 데 불편이 없었나요?
"학생들이 질문을 안 하도록 철저히 준비했어요. 이렇게 마주 앉아 대화하는 데는 지장이 없잖아요. 사실 귀가 안 들리면 마누라 잔소리도 안 들리는 이점도 있어요."
그는 정년퇴임하면서 대학에 자신이 수집한 씨앗 1,700종을 기증하기로 했다.
자신의 살점과 같다는 그 씨앗들 말이다.
"내가 이 일에 미쳐 잡초 씨앗 말고는 저축해놓은 게 없어요. 주식투자나 다른 재테크도 모르고. 정년퇴임하니 사무실을 마련할 여유가 없어요. 그러자 총장이 자기 연구실을 3년간 쓰라고 해요. 이제부터 수집한 잡초를 집대성한 진짜 백만 불짜리 대작을 만들려고 해요. 물론 경제적 후원자가 나타나면요."
오, 못 말리는 교수님….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다.
밀밭에 벼가 나면 벼가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밀이 잡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다.
산삼도 원래 잡초다.
타고난 아름다운 자질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잡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보리밭에 난 밀처럼, 자리를 가리지 못해 뽑히어 버려지는 삶이 너무나 많다.
지금 내 자리는 제 자리인가?
잡초는 없다.
자리를 가리지 못해 잡초가 될 뿐이다.
글 최보식 기자
잡초, 나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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