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옆 단 오버록을 에이 급 재봉사가 보통 시간당 오륙십 장 꿰매는 것을 백오십여 장 수준으로 끌어올린 우리 선수들
캄보디아에서 노후 대책
캄보디아에서 봉제공장에 일당 재봉사를 대주는 사람을 '메 꼬은 짜으'라고 말한다.
'메'는 '우두머리, 으뜸'이란 뜻으로 '메 다이'라고 하면 '엄지손가락, 최고'라는 뜻이다.
'꼬은 짜으'는 '자식, 손자'라는 말로서 객공 사장을 '자식, 손자의 우두머리'라고 부른다.
나이 많고 적은 것 상관없이 일거리를 제공해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리는 사람에게 자존심 강한 캄보디아 사람들이 대우하는 말이겠다.
요즘 캄보디아 봉제 경기가 썰물에 가깝다.
시기적으로 작업이 많지 않고 공임보다 인건비가 많이 올라 수지가 맞지 않아 문 닫는 공장이 숱하다.
오늘 가내 공장에서 바지 만육천여 장을 꿰매고 쫑파티를 한다.
다음 작업이 원단이 늦어 3주 가까이 쉬고 9월 중순쯤 시작할 예정이다.
그때부터는 오더가 안정적으로 삼십여 만장이 예정되어 있어 우리 직원들도 내년 초까지 쉴 틈 없이 일해야 하고, 낮은 공임이라도 다다익선으로 이윤이 제법 남을 수 있다.
그동안 인형과 바지 작업을 하면서 매일 감사하는 일과 재미있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작업에 공백기가 생기고, 원청에서 결재가 원활치 못해 허덕이고, 우리 측에서 미처 생각지 못한 대형 사고가 터져 난감했던 일도 있었고, 그런 불편한 일들로 인해 글을 올리기가 마땅치 않았다.
실밥 따는 것도 시간당 이삼십 장에서 오십여 장으로 끌어올린 우리 깟 쁘로이(실밥 따는 직원)들
글쓴이는 평생을 아껴 쓰고 싼 것만 찾고, 나누는 삶과는 먼 깍쟁이로 살았다.
그러다가 카페회원 쎄미스틴 님을 한 팔 년 전에 뻬루에서 만나 타이에서 일 년 넘게 같이 생활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됐다.
님은 늘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 나누는 것이 생활화된 사람이다.
그런 것을 보고 캄보디아에서 살면서 글쓴이도 조금씩 변화했다.
남들이 보면 좀 맹하게 보일 정도로 내 이익보다는 현지인들을 챙기게 됐다.
그래서 다른 객공 사장에 욕먹더라도 객공 직원들 일당을 프놈펜에서 나름대로 최고로 쳐주었고, 집에서 일하면서 직원들 쓰는 화장실을 내 방보다 깨끗하게 청소해놓고 화장지, 비누가 떨어지지 않게 했고, 반찬 만들 때 조금이라도 나눠 먹으려 했고, 혹시 배고플 직원들을 위해 라면도 늘 채워놓았다.
일도 잘하고 밥도 맛있게 잘 먹는 우리 직원들
이렇게 직원들과 정을 나누고 인연을 쌓다 보면 세월이 흘러 캄보디아에 많은 우호세력이 생기지 않을까 감히 생각한다.
말하자면 글쓴이 나이 칠팔십 되어도 캄보디아에 살고 있으면, 이들의 도움으로 객공 내지는 다른 묵고사는 일을 같이할 수 있지 않을까.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 이런 것보다 더 훌륭한 노후 대책이 어디 있을까? ^^
2016년 9월 1일 쓴 글입니다.
최근 미국이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에 탈퇴하면서 캄보디아 봉제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국은 구정 연휴인 모양인데 캄보디아도 쫄 츠남 쩐이라 해서 중국계 캄보디아인에게는 큰 명절이나 공식 휴일은 아닙니다.
납품기일이 바쁜 한국 공장은 쉬는 날 없이 일합니다.
오늘 토요일 오후에 일당과 주급 나누어주고 객공 직원들과 회식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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