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사모아 원양어선 기지와 페스카마호 살인 사건

부에노(조운엽) 2020. 11. 1. 07:30

 

 

아메리칸 사모아의 천혜의 항구 파고파고항

사모아 원양어선 기지와 페스카마호 살인 사건

우리의 해피 라틴호는 대만과 필리핀 사이의 바시채널을 지나고 있다.

조류가 세 뱃전에 하얀 포말이 선수로 넘쳐오고 바다는 회색빛이다.

전속력으로 파도를 헤쳐나가 넓은 필리핀해에 들어갔다.

멀리 한국어선 몇 척이 태평양을 향해 기우뚱대며 가는 것이 보인다.

아마 남태평양에 참치를 잡으러 가는 선단인 모양이다.

남태평양의 아메리칸 사모아에 우리나라 원양어선 전진기지가 있었다.

1958년 우리나라 최초의 원양어선이 사모아의 파고파고항에 입항했다.

그 후 한국 원양어선이 많이 진출했었다.

한국도로공사가 1번 도로를 건설해주었다.

지금은 대부분 철수하고 교민 백여 명만 남았다고 한다.

교민들은 주로 선박 수리업과 납품업, 마트 등을 운영하고 있단다

아직도 여러 나라 어선들이 이 부근에서 참치잡이를 하고 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큰 참치 가공업체인 동원산업 계열사인 스타 키스트가 있다.

우리나라 원양어업은 1957년 참치잡이 배 지남호가 인도양에 시험조업을 나가면서 시작됐다.

이후 전 세계 바다를 누비는 효자 수출 산업으로 커오다가 90년대부터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원양어업은 정부의 외교력이 미치지 않는 연안국과의 민간 외교 역할도 했다.

하지만, 원양어업 호황 뒤에는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고기 잡다가 돌아가신 많은 원양어선 선원의 희생이 있었다.

라스팔마스, 사모아, 수리남 등 8곳에 300여 기의 원양어선 선원 묘지가 있다.

이제 한국인 선원 유골을 우리나라로 이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참치 어선은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에서, 오징어 선단은 남대서양 포클랜드 어장, 페루 해역 등에서, 명태 트롤은 러시아, 베링해 등지에서 조업하고 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서아프리카와 남극해 등에서도 고기를 잡고 있다.

원양어업은 지난 50여 년간 명태, 오징어, 참치 등을 잡아 우리 밥상에 올렸고 수출하여 외화를 벌었다.

1968년에는 박 대통령 내외와 여고생 딸 근혜 양이 방문하여 경호실과 교민 사회에 난리가 난 일이 있다.

그때 난 뭐 하고 있었지?

아, 낡은 교실에서 해진 옷 입고 코 찔찔 흘리며 옥수수죽 얻어먹고 있었지...

20세기 들어 미국이 사모아에 해군 기지를 설치하여 동부를 미국령으로 편입하고 서부는 독일 식민지와 뉴질랜드의 위임통치를 거쳐 사모아 독립국이 되었다.

미국령 사모아는 미국 해외 영토로 외교권과 군사권 빼고 자치를 한다.

독자적인 의회, 행정부가 있고 지사는 주민들의 투표로 뽑는다.

미합중국 대통령은 그에게 임명장을 주는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괌, 미국령 버진아일랜드와는 달리 이 지역 사람은 미국 국민이기는 하지만 미국 시민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 본토에서 6개월 이상 거주하면 시민권이 주어진다.

아메리칸 사모아와 독립국 사모아는 옆에 있지만 다른 나라이다.

사모아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연중 온화한 기후에 꽃과 나무가 넘쳐나 모든 것이 아름다운 섬이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계곡, 폭포와 분지 등 곳곳에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절경이 널려있다.

문신의 기원지라고 하는데 온몸에 여기저기 멋진 문신을 하고 다닌다.

사모아 항공은 승객의 체중에 따라 항공료를 받아 최홍만 씨가 타면 요금을 더 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만도가 높은 나라인 만큼, 이들에게는 나름 합리적인 제도인 모양이다.

사모아 국민 대부분이 과체중으로 비만율이 세계 최고이다.

일본 스모 정상에 오른 무사시마루가 이 나라 사람이다.

남성 평균 체중이 100kg이 넘고 여성도 100kg에 가깝다.

현재 사모아에는 한국 사람이 반 명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사모아 사람인 주사모아 한국 명예영사 제리 브런트 씨 한 명만 살고 있다.

그는 사모아에서 한국을 알리는 데 애쓰고, 한국에도 사모아를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또, 사모아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나라이다.

독립국 사모아와 미국령 사모아 사이에는 날짜변경선이 있어 20분만 날아가면 날짜가 바뀐다.

정말 잊고 싶은 날이 있으면 서사모아로 날아가라.

그러면 정말로 날짜가 바뀌어 오늘 하루가 달력에서 없어진다.

반대로 두 번의 생일이나 결혼식을 하고 싶으면 동사모아로 가서 이틀 연속으로 시간여행을 즐길 수도 있다.

1996년 참치잡이 어선 페스카마호에서 일어난 선상 반란 사건으로 치외법권인 원양어선에서 벌어진 살인과 가혹행위의 실상이 알려졌다.

페스카마호 사건이 국내에 알려지자 나라가 시끄러웠다.

당시 대한민국 변호사였던 문재인 씨가 변호하여 1심 사형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사건이 있었다.

태평양에서 조업하던 페스카마호에서 고정 월급만 받는 조선족 선원들이 하루 8시간 노동 등 근로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작업을 거부하는 일이 생겼다.

원양어선은 고기가 없으면 고기 잡을 준비나 하고 노는데, 고기떼를 만나면 쉬지 않고 고기를 잡아야 한다.

공산국에서처럼 평등하게 하루 8시간만 일하는 게 불가능한 어선 일에 말을 듣지 않고 선장에게 달려들었다.

어선은 고기를 많이 잡지 못하면 존재의 의미가 없다.

선장은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을 교체하려고 사모아로 뱃머리를 돌렸다.

땡빚을 내어 어선에 취업한 조선족 선원들은 강제 하선 시 그 빚을 갚을 수 없을뿐더러, 교대 비용까지 물어내야 한다.

기존 빚에 약 삼만 달러의 빚이 되는 현실에 캡틴에게 봐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빡친 선장이 들어주지 않자 배를 빼앗아 일본으로 밀입국하자는 생각으로 조선족 이등항해사와 선원 6명이 선상 반란을 일으켰다.

선장 등 한국인 선원 7명과 인도네시아인 3명, 조선족 1명 모두 11명을 밤에 1명씩 차례로 불러내어 칼로 찔러 죽여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들은 자신들을 말리던 조선족 선원 1명도 살해하고 맹장염으로 육지로 후송하던 다른 어선의 해양고 실습생 역시 산채로 바다에 던져버렸다.

인도네시아 선원들에게도 칼을 들이대고 같이 살인에 동참하도록 협박하였다.

결국 항해에 필요한 일등항해사 1명만 살려두고 일본으로 가려고 했으나, 그 1항사와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선박 고장을 가장하여 조선족 선원을 창고로 유인한 후 문을 닫아걸어 감금하였다.

제압된 조선족 선원은 1항사가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에 신고하여 전원 체포되어 한국으로 압송되었다.

피고인들은 전부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이었고, 선박은 온두라스 선적이었으며, 피해자들은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 법원에 재판권이 있나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보호주의를 적용하여 한국 형법으로 해상강도살인, 시체유기, 폭력행위 등으로 기소하였다.

6명 모두 1심에서는 사형이 선고됐으나 2심에서 2항사를 뺀 나머지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복역하고 있다.

과연 자기가 편히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있는 걸까?

그들이 한국에서 재판을 받은 게 어쩌면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이었으면 얄짤없이 사형이었다.

중국은 정상을 참작할 게 없으면 살인범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조건 사형하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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