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샤로테, 그대를 사랑했노라

부에노(조운엽) 2020. 12. 9. 06:21

 

 

70년대 스타 중 한 명인 서미경 씨

샤로테, 그대를 사랑했노라

"이만수 선수. 때렸습니다. 큽니다, 커요. 넘어갑니다. 호무랑~ 호무랑~!"

어렸을 때 TV나 라디오에서 야구 중계를 들은 기억이 날 것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좁은 학교 운동장에서 연습하던 선수와 김인식 감독을 자주 봤다.

당시 모교의 성적은 예선에서 올라가기도 버거웠고 어쩌다 전국 대회에 나가도 대부분 초반 탈락이었다.

그래서 세상의 벽이 높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되었다.

해피 라틴호가 금방 지나간 따뜻한 오키나와에는 프로 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겨울 전지훈련으로 자주 갔다.

입속의 연인 롯데는 껌과 과자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온 롯데 모델 출신 배우 서미경 씨가 젊은 우리들의 마음속 연인인 시절이 있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샤로테가 우리의 마음 한 가장자리에 애잔하게 남아 있기도 했다.

애칭이 로테(Lotte)이다.

롯데 제과, 롯데 자이언츠의 상호가 창업자 신격호 씨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베르테르는 무도회에서 처음 만난 샤로테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는 로테에게 호감을 보이며 친해져 집에 찾아갈 정도로 가까워진다.

로테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익어 갈 때 소설처럼 그녀의 약혼자가 돌아오면서 베르테르는 벙 찐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베르테르는 로테를 잊고자 떠난다.

나중에 다시 돌아와 유부녀가 된 로테의 주위를 맴돌며 애태우다가 절망에 빠진 베르테르는 머리에 권총을 쏴 세상을 등진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사랑 이야기를 쓴 소설의 인기가 엄청났다.

당시 유럽의 많은 젊은이가 베르테르처럼 옷을 입고 다니고 주인공처럼 자살한 사람이 수천 명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베르테르식 열병을 우려한 나머지 소설은 판매 금지당하기도 했다.

이후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하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한다.

괴테의 작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자 독일어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독일어는 '짐승의 언어'라고 불릴 정도로 천대받았다고 한다.

당시 유럽 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는 불어와 영어뿐이었다.

괴테는 인생의 모든 것은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 로맨티스트였다고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랑 타령하는 글을 썼다.

괴테는 자신의 삶을 세 문장으로 말했다.

“사랑했노라, 괴로워했노라, 그리고 배웠노라.”

신격호 씨는 2차대전 종전 후 일본에서 추잉 껌을 만들어 팔다가 과자 사업으로 컸다.

롯데그룹이 한국 기업인지 일본 기업인지 논란이 많다.

한국에서는 친일파라며 욕먹고, 일본에서는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서미경 씨는 1970년대 서승희라는 예명으로 배우 활동을 한 우리의 젊은 시대 청춘스타이시다.

아역배우를 하다가 제1회 미스 롯데가 되어 '껌은 역시 롯데껌'이라는 광고로 널리 알려졌다.

그 뒤 높은 인기를 뒤로 하고 신 씨와 결혼하며 은퇴하여 줌마렐라가 됐다.

프로 야구가 처음 시작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 부산 롯데 야구단을 수년간 연구한 선장이 있었다.

그는 배에서 원고를 써 ‘필승 전략 롯데 자이언츠’라는 책을 냈다.

그 내용에 감동 먹은 롯데 야구단에서 그를 만나자고 했다.

그 캡틴은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고를 졸업했다.

경남고는 부산고와 함께 부산 야구의 얼굴로 꼽힌다.

자연스럽게 부산 야구팬이 되었다.

야구를 좋아했지만, 야구와는 무관한 생활을 했다.

해양대학을 나와 항해사가 되었다.

경력을 쌓아 미국 선주 배에서 이십 대의 젊은 나이에 선장이 되었다.

캡틴이 책을 낸 이유는 단순했다.

롯데 자이언츠가 89년 최하위로 떨어졌고, 다음 해에도 부진했기에 롯데 프런트에 ‘구단이 달라져야 한다’고 여러 번 전화로 건의했지만 바뀌지 않아서 자비로 책을 만들었다.

반응은 바로 왔다.

책을 읽은 롯데 구단주는 글쓴이를 만나 롯데 자이언츠 단장으로 영입했다.

파격적인 인사였다.

당시 캡틴은 삼십 대였고 야구 실무 경험은 전혀 없었다.

그는 롯데에서 두 시즌을 보냈고 팀이 창단 이후 두 번째이자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게 된다.

홈 관중은 2년 연속 백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 뒤 캡틴은 박수받을 때 미련 없이 구단을 떠나 바다로 돌아왔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마도로스가 바다에서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파도밭에서 고생하는 이들이 있기에 세상의 물류가 움직이고 자동차가 굴러가며 밥상에 생선이 올라온다.

글쓴이도 다시 넓은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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