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삼천포로 빠진 해피 라틴호

부에노(조운엽) 2020. 12. 19. 05:45

 

 

고대 이집트 종이인 파피루스에 그린 그림

삼천포로 빠진 해피 라틴호

음악 : 어디쯤 가고 있을까, 전영 https://www.youtube.com/watch?v=hB0V9IJGjRY

"떠나간 그 사람은 지금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애인도 없는 애달픈 청춘이 이런 노래를 들으면 센치해지곤 했다.

대마초 파동과 신군부의 서슬 푸른 가요 금지 조치로 기존 가수들이 숨죽이고 있던 7080시대.

단발머리에 잠자리 안경을 쓴 앳돼 보이는 가수 전영에 우리 청년 문화의 순수함이 느껴졌었다.

가로등도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에서 해피 라틴호는 고베를 향해 어떻게 갈까?

그냥 가다 보면 나오겠지...

Oh~ No!

과학 기술이 발달한 요즘은 자동 항법 기기인 GPS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지가 알아서 잘 간다.

예전에는 천문항해라고 정오에 태양의 고도를 섹스턴트로 재 현 위치의 경위도를 알았다.

또 밤에는 서너 개 별의 고도를 육분의로 재 Almanac이란 책자를 보고 위치를 알았다.

프랑스 브랜디 종류인 알마냑이 아니다.

앨머낵은 콜럼버스 할아버지 이전, 이천 년도 넘은 때부터 해와 별의 시간별 고도를 측정해 만든 책자이다.

앨머낵은 다음 해에 있을 해와 달이 뜨고 지고, 밀물과 썰물 시간 등을 알려주는 등 일 년에 한 번 나오는 정기 간행물이다.

이 연감은 항해사, 농부 그리고 천문학자 모두에게 유용했다.

연감의 기원은 고대 바빌로니아부터였고 달과 별의 위치를 예측하기 위해 별표가 만들어졌고, 중세 이슬람 천문학으로 이어졌다.

근대에는 11세기에 나온 아자르킬의 앨머낵을 많이 썼다.

이 책은 1088년부터 4년 동안 해와 달 그리고 별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다른 많은 관련 표들도 제공했다.

15세기에는 구텐베르크가 처음으로 인쇄된 연감을 출판하였다.

이후 수 세기 동안 인쇄판이 매년 나왔다.

17세기에는 영어 연감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고 한다.

현대의 연감에는 전 세계를 망라하는 통계적 자료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젠 GPS Almanac도 나온다.

미 해양관측소와 영국의 왕립 해양기상관측소 등에서 주는 정보로 연감을 만든다.

내비게이션을 포함한 GPS는 바다와 육지에서 위치를 아는 종결판이다.

물론 모든 게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 더 발전하겠지...

이런 모든 항해 장비의 발달은 수 세기 동안 항해사들이 쓰던 섹스턴트를 골동품으로 만들고, 위성통신의 발달로 무선통신의 입지가 약하게 됐다.

그래서 글쓴이가 육상에서 애 놓고 아이 엄마와 알콩달콩하게 살 때 선박 통신사가 없어진다는 아쉬운 소식이 들리고 현역 국장들이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Radio operator 자격증이 있는 사람은 시추선이나 관련 업체에 연봉 사오만 불 받고 해상 근무를 할 수 있다.

잘 나가다 혼자 처량하게 된 신세를 '낙동강 오리알 됐다.'라고 말한다.

어원은 낙동강 갈대숲 둥지의 오리알이 장마로 갑자기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는 모습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다른 설로는, 한국전쟁 때 낙동강 남쪽에서 국방군이 기관총과 박격포를 쏴대면 인민군이 맞고 낙동강 물속으로 떨어졌었다.

병사들을 지휘하던 한 중대장이 그걸 보고 '낙동강에 오리알이 떨어진다!'라고 했다던가.

또, 다른 설로는 미군 폭격기가 인민군이 주둔해있는 낙동강 북쪽에 폭격했다.

이때 한 군인이 폭탄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야, 낙동강에 오리알이 떨어진다!'라고 한 것이 낙동강 오리알의 유래라고 하는 말도 있다.

이는 군 교육 자료인 '전투, 프로가 되는 길'이라는 책에도 나온다고 한다.

한 바다에서 어디쯤 가고 있을까 하는 이야기하다가 말이 삼천포로 빠졌는데, 빠진 김에 금속활자에 대한 것을 짚고 가자.

15세기에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만든 금속활자보다 더 먼저 만든 대단한 민족이 있었다.

고려는 인쇄술이 발달하여 많은 책이 목판 인쇄되었다.

그러나 여러 종류의 책을 인쇄하려면 목판보다 금속활자판 인쇄가 효율적이다.

그래서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가 고려에서 만들어졌다.

우리 조상님들도 그런 건 대단하셨다.

목판을 이용한 인쇄술은 중국에서 6세기경에 이미 있었고 책의 보급을 늘릴 수 있었던 건 인쇄기 덕분이었다.

고려의 금속활자는 당시 최 씨 무신정권이 불교 전파를 위해 불교 서적 출간 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었다.

대중화된 인쇄물이 나와 세상이 변하게 된 건 구텐베르크 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책은 고대 이집트의 종이인 파피루스 두루마리에서 시작됐다.

글쓴이도 배 타고 알렉산드리아항에 갔을 때 기자 피라미드에 관광 가서 낙타도 타보고 파피루스에 그린 그림을 예쁘고 신기해서 산 적이 있다.

귀국해서 검은색 액자에 넣어 보니 너무 예뻐 남희 아닌 다른 여인에게 선물했다.

누군가는 묻지 마시라.

세월이 흘러 그 또한 이미 떠나간 그 사람이 되었으니...

네모난 종이의 한쪽을 묶어 만든 책이 서양에 나온 건 5세기경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책은 직접 손으로 썼다.

양피지에 글과 그림을 그려 넣고, 가죽으로 표지를 만들어 금테를 둘러 가격이 집 몇 채 값일 정도로 비쌌다고 한다.

인쇄술을 연구하던 구텐베르크는 주형으로 만든 인쇄용 금속활자를 나무틀에 하나하나 넣어서 조판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한 글자만 잘못되어도 판 전체를 갈아야 했던 기존의 목판인쇄와 달리 넣다 뺐다 할 수 있는 금속활자는 빠르고 경제적인 방법이었다.

구텐베르크는 그렇게 만든 활자판을 인쇄기에 놓고 종이에 눌러서 찍어냈다.

오늘날 인쇄기를 가리키는 단어인 Press는 원래 포도주나 올리브유의 압착기를 말했다.

구텐베르크가 새로운 인쇄술을 언제쯤 만들었는지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대략 1440년경으로 보고 있다.

구텐베르크 이전에는 책 한 권을 손으로 베껴 쓰려면 두 달이 걸렸으나 인쇄하면 일주일에 수백 권이 나왔다.

그때부터 반세기 동안 유럽에서는 수천만 권의 인쇄본이 천지에 깔렸다.

그야말로 정보의 대폭발이 일어나 오늘날의 인터넷 효과보다 못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쇄술의 발달로 종교개혁이 터졌다.

가톨릭 교회에서 되지도 않는 면죄부까지 팔아 돈을 버는 것에 항의하는 루터의 반박문이 빠르게 인쇄, 배포되어 민중들이 종교개혁을 원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구텐베르크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인쇄문화가 그 보다 앞질렀다고 자랑한다.

고려 때인 1230년경에 간행된 '상정고금예문'이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이지만 실물이 전해지지 않는다.

그다음으로 1377년에 간행된 '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는 책인데, 19세기에 한양에 살던 프랑스 외교관이 헐값에 사서 가지고 갔다.

이 책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었다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인정되었다.

구텐베르크보다 칠십여 년 앞섰다고 한다.

삼천포는 경남 끝에 있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이고 따뜻하며 해안 경치가 아름답고 먹을거리가 많아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소문나 있다.

삼천포는 진주 바로 아래에 있어 이곳에 가려면 진주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삼천포는 행정구역 개편 때 사천군과 합쳐져 사천시로 바뀌면서 그 이름이 사라졌다.

그러나 삼천포라는 지명은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우리 말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말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으나 옛날 한 장사꾼이 진주로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삼천포로 가는 바람에 낭패를 봤다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또는, 기차든 차를 타든 진주로 가는 길에 잘못 가 삼천포까지 가게 되었다는 말이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은 ‘길을 잘못 들다.’라는 뜻만 아니라 ‘이야기가 곁길로 빠진다.’ 등과 같은 의미로도 쓰인다.

이왕이면 우리 영감과 줌마렐라는 '잘 나가다 샛길로 빠진다.'라는 순화된 말을 쓰는 것이 삼천포 동포들이 더 좋아할 거 같다.

물론 글쓴이는 역설적으로 삼천포를 더 강조하여 사라진 삼천포를 기억하게 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