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라이트 요코하마가 일본에서 대히트하여 십여 년간 현역 최고 가수 중 한 명이었던 이시다 아유미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와 축소지향의 일본인
음악 : Blue light Yokohama, Ishida Ayumi https://www.youtube.com/watch?v=pkQ9EJ7rk2E
마찌노아카리가 도데모기레이네 요코하마~
불루 라이토 요코하마~
거리의 불빛이 너무 곱다는 요코하마.
이 노래를 부른 야사시한 이시다 아유미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가수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배우로도 여러 상을 받은 팔방미인과이시다.
해피 라틴호가 삼천포로 빠지지 않고 일본에 간다니 갑판부의 지도와 거울인 젊은 1갑원이 짬만 나면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를 흥얼거린다.
그림만 잘 그리는 줄 알았는데 언제 일본 노래를 배워 저렇게 잘 부른다니...
허긴 노래를 잘하지 못한다는 박 통도 어느 자리에선가 이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가 학생 때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넘어선 일제 워크맨을 갖고 싶어 했던 기억이 날 것이다.
그때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한 삼십 년은 앞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뒤따라가면 그들은 더 앞서간다는 말과 함께...
영원히 일본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고, 그래도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했을 것이다.
조선이 당파싸움으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서구 문화를 받아들여 엄청나게 발전하였다.
그중 하나로 외국 진출을 위해 선박회사를 키웠다.
2차대전 때 일본 상선은 연합군의 폭격에 많이 가라앉았지만, 전후 정부에서 지원한 계획 조선으로 세계 최대 상선국이 되었다.
NYK, MOL, SANKO LINE 등 엄청난 규모의 선박회사들이 널려났다.
당시 일본의 큰 회사 한 군데에서 보유한 선단이 우리나라 전체 화물선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한선박의 이만 톤급 한양호를 진수한다고 대통령 부부와 고관들이 모여 좋아서 손뼉 치고 난리 블루스 출 때 일본은 이삼십만 톤급 유조선이 다녔다.
또, 항만을 현대화해 큰 배들이 아무 항구나 다 드나들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부산, 인천 말고는 큰 배가 들어갈 만한 항구가 별로 없었다.
한때는 일본 선사가 세계에서 가장 컸으나, 나중에 그리스와 덴마크의 머스크라인이 치고 올라왔다.
그리스는 선박왕 오나시스를 필두로 상선 보유 1위국이 됐고, 머스크 라인은 컨테이너선만 오백 척 이상에 자사 보유 컨테이너 수가 이백만 개가 넘는 대형 선사로 컸다.
이어령 교수가 쓴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지금도 진행형이라고 한다.
당시 소니의 워크맨이 미니카세트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워크맨은 손바닥에 들어올 만큼 작았으나 기능은 훌륭해 휴대성이나 성능에서 다른 제품을 압도하였다.
그러다 보니 학생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갖고 싶어 했다.
글쓴이가 사랑하는 막내 고모께도 첫 귀국 선물로 아이와 워크맨을 드렸다.
일본은 산업 현장에서 또, 생필품, 문구, 완구 등 많은 부분에서 작게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였다.
일본의 이런 축소 지향성은 물건에만 한정된 게 아니고 언어, 시, 문학 같은 문화에도 전반적으로 퍼져 있다.
이렇듯 그들이 사는 집도 작고 삶 전체에 축소지향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일본어로 먼저 출간하고 나중에 한국어로 번역해 나왔다.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 미국 여류작가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과 더불어 일본인을 다룬 명저 10선 중 하나로 꼽힌다.
삼십여 년 전에 나온 책이기에 지금의 일본 사정과는 다른 점도 있겠지만, 책에 쓴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많이 공감하는 모양이다.
일본 유학도 갔다 오지 않은 이어령 교수가 저런 민감한 책을 쓴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일제 강점기에 소학교에서 조선어를 쓰면 조 터지고, 일본어를 강제로 배웠다고 한다.
그런 그가 프랑스 출장길에 일본에 이삼일 머무른 적이 있었단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서 일본인들과 술좌석을 같이 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에 대해 농담 쌈치기 하다 '학생사'라는 출판사 사장이 그를 눈여겨보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쓰자는 제의를 했다.
그때는 한 귀로 듣고 흘렸는데 귀국길에 또 일본을 경유하게 되어 그 출판사 사장이 하네다 공항까지 마중 나와 이번엔 강연을 요청했다.
얼떨결에 노잣돈에 보태쓰려고 도쿄에서 계획에 없는 강연을 하게 되어 이 교수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청중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소학교 때 배우고 몇십 년을 쓰지 않았던 어눌한 일본어지만, 일본 문화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비판에 청중들이 감동했단다.
이 강연 모습이 신문에 실렸고, 일본 대사가 그걸 보고 이대 총장과 함께 그를 관저에 초대해 책 출간을 정중히 요청했다.
그래서 이 교수는 동경대 객원 연구원으로 일본에 머물며 일 년 육 개월 동안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을 일본어로 썼다.
그렇게 나온 책은 일본 매스컴에 폭발적인 조명을 받고, 신문에 그의 사진과 함께 도배되었다고 한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사람들이 보는 신문에 죄다 이 교수 사진이 나와 쪽 팔려서 도중에 내린 적도 있단다.
인터뷰, 강연 요청과 원고 청탁이 밀려왔다.
강연 도중 일본어 단어를 모르거나 생각나지 않을 때 청중에게 물었다.
'이런 거 있잖아요. 일본어로 뭐라 하죠?'라고 말하면 청중들이 여기저기서 대답하고 맞으면 손뼉을 치고 웃음과 환희의 도가니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이어령식 특유의 강연 신화가 나오게 됐단다.
이 교수는 한국에서도 평생 그런 인기를 누린 적이 없었다나...
백제 시대 왕인 박사가 일본의 요청으로 학문을 전해 줄 때만큼이나 영향력이 커진 이 교수는 극구 사양하던 나라 현립 대학교 명예총장까지 했다.
조선 소학교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본 일본에 대한 문화관과 예리한 관찰력, 해박한 지식 그리고 독창적인 생각이 대단한 책을 쓰게 된 모양이다.
그 책을 읽다 보면 한국인과 다른 부분도 있겠으나 현대를 사는 한국인이 생각해 봐야 할 내용도 많다고 한다.
핵가족으로 점점 커지는 우리 안의 배타성과 이웃 간에 소통이 잘 안 되는 문제는 이미 일본이 경험한 사회 현상이라고 한다.
이 좋은 세상에서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게 틀린 거라고 우기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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