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배에 얽힌 슬프면서 아름다운 자화상

부에노(조운엽) 2020. 12. 29. 06:32

 

 

현대중공업이 SK해운에 인도한 18만㎥급 천연가스 연료를 쓰는 LNG운반선

배에 얽힌 슬프면서 아름다운 자화상

음악 : Sailing, Rod Stewart https://www.youtube.com/watch?v=FOt3oQ_k008

해피 라틴호가 고베에 철광석을 풀어주면 아마 고베제강에서 제련할 것이다.

한때 아베 형이 젊었을 때 평사원으로 근무했던 회사란다.

고베제강은 일본 시장에서 철강 3위, 알루미늄 2위를 기록하는 탄탄한 철강업체이다.

그런 고베제강이 수십 년 동안 소비자를 속이고 함량 미달인 제품을 납품해왔다는 게 탄로 나 일본은 물론 국제사회에도 큰 물의를 일으켰다.

자위대 군사 장비, 토요타 등 자동차 업체, 신칸센에 들어가는 부품, 히타치에서 제작 중인 영국 고속철도, 보잉사 등에 고베제강의 알루미늄이 들어갔다고 한다.

물론 우주선과 원전, 현대차와 대한항공에도 납품되었다고 한다.

이어 미쓰비시의 품질 조작이 발각되면서, 일본 기업에 대한 신뢰가 산산이 무너졌다.

일본의 원전과 함께 고속철도 수출은 국가가 주도하는 엄청나게 큰 사업이다.

따라서 영국 고속철도에 문제가 생긴다면 일본 국가 신뢰도에도 먹칠하는 것이다.

약 먹었나, 어째 요즘 일본이 하는 일이 왜 이러지.

얼마 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코로나의 미숙한 처리와 아베 마스크로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질 않나...

지금 철강 생산은 단연 중국이 탑이고 인도, 일본이 뒤따르고 있다.

한국은 인도와 크지 않은 차이로 6위권이다.

수출은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순이다.

우리나라는 수입 순위도 4위 안에 들어간다.

대한민국에서 안 만들거나 가격이 싼 것은 수입해서 쓴다.

한국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하면서 산업화를 하려면 철강의 자체 생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난한 우리나라에는 달러가 없어 종합제철소를 지을 수가 없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채 100달러도 안 됐고, 제철소를 만들기 위해 주식을 공모했으나 목표액의 1%도 되지 않았다.

다들 종합제철소 건설은 무모한 일이라며 반대했고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성공할 수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판단했다.

종합제철소 건설에 쓸 자금을 만들기 위해 박태준 씨가 미국에 갔지만, 퇴짜를 맞았다.

나올 데가 없으니 궁하면 통한다고 그의 아이디어로 대일 청구권 자금 중 농수산 지원 자금을 전용해 쓰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제철기술을 제공하기로 했고, 신일본제철의 기술로 만들게 되었다.

포항 앞바다의 수심이 깊어 준설을 하지 않아도 십만 톤급의 화물선이 드나들 수 있어 제철소 부지로 정해졌다.

1973년 마침내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 흘러나왔는데, 경부고속도로 건설 비용의 세 배가 들었다고 한다.

포항제철은 조업 첫해부터 흑자를 내 세계 철강 역사에서 제철소를 가동한 첫해부터 이익을 낸 기업이 됐다.

중국의 덩샤오핑이 포항제철이 샘이 나 신일본제철에 찾아가 중국에도 제철소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신일본제철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제철소는 돈과 기술로만 만드는 게 아닙니다. 박태준 같은 사람이 없었으면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는 생길 수가 없었습니다. 포철은 기적이었습니다."

이어 광양제철소를 만들고 포스코는 연간 조강생산 이천만 톤이 넘게 됐다.

포스코는 박태준 명예회장과 창립 멤버 대부분이 군인 출신이고, 건설, 조선업과 더불어 현장이 매우 위험하기에 회사 문화가 한마디로 상명하복의 군대 분위기였다.

예전에는 쌍소리에 조인트 까이는 것은 기본이고 포스코 내에서 속도위반이나 안전수칙 위반에 대한 통제가 칼 같았다.

제철단지 금연구역에서 담배 피우다 걸려 삼진 아웃되면 이유 불문하고 포스코에서 잘린단다.

이렇게 포스코는 안전에 신경을 많이 쓰나 경쟁사인 현대제철과 함께 매년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제철소 현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박태준 씨는 92년 포스코 양대 제철소 완공 후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면서 회장직을 사퇴하였다

다른 대기업들과는 달리 박태준은 자기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았고 사원 출신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그런저런 이유로 포스코에서 상당한 양의 주식을 박 씨에게 주려고 했는데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 배는 대부분 이런 제철소에서 나오는 철판으로 조선소에서 만든다.

그러니 큰 배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철강이 들어간다.

셰일가스가 나오면서 미국은 천연가스가 넘치고, 중국은 환경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LNG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아무리 경제성장을 우선으로 치는 중국 공산당 정권이라도 너무나 심해지는 환경오염에 친환경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환경 위기가 심각하다.

결국, 미국 등 천연가스가 나오는 나라에서 LNG를 실어나를 배가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LNG운반선의 개스 화물창 만드는 기술은 아무 나라나 만들지 못해 프랑스 엔지니어링회사 GTT가 독점하고 있었다.

한국 조선 3사는 GTT의 독점시장을 뚫기 위해 자체 화물창 기술을 개발해왔다.

현대중공업도 LNG 화물창 자체 기술인 하이멕스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의 솔리더스는 운송 효율 지표인 LNG 기화율이 3사 화물창 기술 가운데 가장 뛰어나며 GTT사 것보다도 좋다.

그동안 국내 조선 3사는 프랑스 GTT사에 로얄티를 척당 수백억 원을 주고 LNG선을 만들었다.

그들이 파견한 엔지니어들의 감리를 따르느라 공기를 단축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프랑스보다 나은 솔리더스 기술을 대우조선해양이 개발했다.

공기도 최대 일 년까지 줄일 수 있다.

자체 기술이기에 가격경쟁력까지 갖춰져 그동안 말썽꾸러기였던 대우조선해양으로서는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2020년까지 수백 척의 LNG선이 발주되면 우수한 기술을 가진 한국의 조선소가 대부분 수주할 것이다.

우리가 다 수주하지 못해도 선주가 한국의 솔리더스 기술로 건조해달라고 요구하면 앉아서 척당 수백억의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

LNG선은 척당 가격이 약 2억 달러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 화물은 자기 나라 배로 나르고, 자국 선박은 중국에서 만든다는 방침에 대대적으로 LNG선 개발과 건조에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는 석탄을 천연가스로 전환하는 정책으로 자국 내 LNG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기에 LNG선도 많이 필요하다.

중국에서 만든 LNG선은 이미 여러 번 고장과 사고를 일으켜 선주들 사이에 악명이 높다.

선박 인도 일정을 제때 맞추지 못한 적도 많다.

중국이 여러 번 사고를 일으키고도 LNG선 계약을 따내는 것은 단가가 싸고 막강한 구매력 때문이다.

LNG를 팔아야 하는 나라가 최대 고객인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이 구매력을 앞세워 수주물량을 따내면 한국과 나눠 먹기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중국이 꾸준히 LNG선 경험을 쌓아가니 한국과 기술력 격차도 줄어들 것이다.

외국 선사에서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중국에서 배를 만들어 오면 업계에서는 쪽팔리는 일이라고 한다.

'싼 맛에 중국에서 배를 만들었다가 사고 종합 백화점을 오지게 겪고 나서야 좀 비싸도 한국, 일본 조선소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배라는 게 몇 년 쓰고 버리는 싸구려 물건도 아니고, 한 이십 년 이상은 굴려야 은행 원금, 이자 내면서 본전 찾고 벌 수 있는데 만날 고장 나고 보험료가 자꾸 오르면 선주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그래서 배가 트러블이 나기 시작하는 4~ 5년쯤에 중고선으로 팔고 신조선을 발주하는 선주도 있다.

그리스는 그런 중고선을 싸게 사서 잘 굴리는 나라로 소문났다.

우리나라는 예전에 선주가 몇 번 바뀐, 에어컨도 잘 안 되는 써금써금한 배를 헐값에 사서 개고생하며 고쳐 썼다.

그것도 감지덕지하며 굴리다 보니 어느덧 세계 해운 강국이 되었다.

우리 선배 마도로스의 슬프면서 아름다운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