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조선소 풍경

부에노(조운엽) 2021. 1. 3. 07:38

 

 

TV에 중계된 우리나라 조선소에서 처음으로 만든 26만 톤급 초대형 유조선 Atlantic Baron호

배 왼쪽에 바글바글하는 환영 인파 앞에서 육 여사가 대모가 되어 박 통이 지켜보는 가운데 명명식을 했다

조선소 풍경

해피 라틴호를 타니 일본 조선소에도 가보고 좋네.

전에 탱커 탈 때 울산 현대미포조선소 드라이 독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조선소는 워낙 작업이 위험하여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다.

조선소의 풍경은 엄청나게 큰 골리앗 크레인이 압도하며 온천지가 다 철판과 위험물 판이다.

정문까지 조심해서 나와야 겨우 사람 사는 안전한 곳이 보인다.

일본과 중국의 선주들은 새 배를 주로 자기 나라 조선소에 발주한다.

그동안 잘 만들어 왔고 또 잘 굴러간다.

그런데 해난 사고와 환경 오염이 갈수록 심해져 국제해사기구인 IMO에서 유조선 화물창을 이중으로 만들어 웬만한 충돌에는 기름이 바다로 새지 않도록 했다.

그렇게 퇴출당한 단일 선체 유조선이 엔진 등은 멀쩡하니 폐선할 수 없어서 광석선으로 개조하여 무리하게 운항하다가 스텔라 데이지호 침몰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배는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만들어 중국에서 개조했다.

IMO에서는 또 해상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해 배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0% 이하로 줄이는 것을 강제하고 있다.

그래서 비싼 저유황 연료를 써야 하며, 기준치가 넘으면 바닷물을 쏴주는 배기가스 정화 장치로 황산화물을 적게 배출하도록 했다.

배 연료로 저유황 벙커 C보다 천연가스를 쓰는 것이 이산화탄소를 훨씬 적게 배출하면서 연료비도 적게 든다.

요즘 LNG를 주 연료로 쓰는 이중 연료 엔진이 대세이다.

얼마 전 중국에서 만든 LNG 운반선 글래드스턴호가 호주 앞바다에서 LNG 추진 엔진이 고장 나 퍼졌다.

고치다 잘 안 돼 생고생하다가 정작 고치고 나니 어마어마한 수리비에 다 넘어갔다는 것 아닌가.

이렇게 중국에서 만든 LNG선은 기술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또한 기술 부족으로 제때 배를 인도하지 못해 선주에게 클레임을 무는 경우도 허다했다.

LNG 추진선은 벙커 C 대신 액화천연가스를 연료로 써 황산화물 등 유해 가스 배출을 크게 줄인 친환경 선박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상온에서 날아가는 가스인 LNG를 -160℃ 이하로 액화시키는 기술이 필요하다.

LNG 운반선은 적도를 지날 때도 화물창 온도가 항상 -160℃ 이하를 유지해야 하고, 외부 충격에도 안전하게 가스를 보관해야 한다.

화물창 온도가 높아지거나 충격이 크면 가스가 팽창해 폭발할 수 있다.

국내 조선소들이 LNG 추진선과 운반선을 많이 수주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과 중국보다 기술이 낫기 때문이다.

중국은 싼 인건비로 만들기 쉬운 벌크와 탱커 수주 주도권을 이미 가져갔고, 최근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도 하고 있다.

하지만 LNG 운반선은 상온에서 기체인 LNG를 -160℃로 액화하여 운반하고 보관할 건조 기술이 필요해서 아직 중국 기술력으로는 버거운 모양이다.

일본의 경우 원형으로 분리된 모스 타입의 LNG운반선을 고집하다가 우리나라 조선소들의 선체 일체형 사각형 멤브레인 타입에 밀려났다.

적재 용량은 멤브레인이 훨씬 많아 경제성이 좋으니 요즘 멤브레인 형 가스선을 선호한다.

최근 일본에서 그룹이 아닌 개인 해운사인 Nissen Kaiun이 현대중공업에 초대형 가스 운반선 세 척을 발주해서 일본에서 난리가 났다.

이 일본 선사는 친환경 규제에 맞는 LPG 1호선 발주를 현대중공업에 했었다.

두 척은 각각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에 발주했는데 그들 사정으로 포기해서, 현대중공업이 만들게 됐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기술력이 이제는 일본보다 더 낫다는 걸 뜻하는 것이다.

80년대 2차 오일쇼크 이후에 유가가 급락한 것은 조선업계 1위였던 일본이 처음 맞는 격변기였다.

유가 급락을 경기 불황의 시작이라고 잘못 판단해 스스로 조선소를 반으로 줄이고 기술 인력들을 다 잘랐다.

그리고 잘못을 감추려고 조선업은 노동집약적이라 사양산업이라는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젊은 두뇌들이 조선업 회사에 들어오지 않아 자멸하게 되었다.

일본의 그 기술 인력들이 대거 한국, 중국으로 가고 중국은 조선업을 시작하면서 일본을 벤치마킹했고 한국을 경쟁 상대로 봤다.​

중국은 부족한 기술력이지만 자국 발주량이 많고 인건비가 낮으니 성공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선사들이 싼 맛에 중국에 배를 주문했다가 개피를 보게 된다.

그러니까 일본은 잘못 판단해서 시장을 잃어버렸고, 중국은 기술이 떨어지면서 저가로 밀어붙이다가 배를 인도받은 선주들이 좀 써보니까 개판이라 결국 좀 비싸도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단다.​

같이 배 타던 경험 많은 선원 이야기가 사실 우리도 한국 조선소에서 배 처음 만들어 항해하면 뭘 덜 조였는지 덜그럭거리는 소리도 많이 나고 천장에서 뭔가 굴러다니곤 했단다.

일본에서 동시에 만든 자매선은 조용했다는데...

우리나라 조선업계가 이렇게 크게 된 데에는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의 처남 리바노스와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현대 정주영 회장은 우리나라가 수백 년 전에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어 영국에서 선박의 주문만 받으면 차관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리바노스 회장은 조선소도 없이 미포만 백사장 사진과 유조선 설계도면만 달랑 가지고 찾아온 정 회장에게 유조선 두 척을 발주하여 현대에서 차관을 받게 도와준 특별한 인연이 있다.

지금까지 수십 척의 유조선을 발주했으며, 리바노스는 명명식 중 여덟 번이나 직접 참석할 정도로 현대중공업에 애정을 보였다.

리 회장이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 탄생의 일등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대상선 전신인 아세아상선을 만들게 된 건 나중에 리바노스가 배를 인수하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선박회사를 차리게 되었다.

그렇게 전화위복이 되었으니 아세아상선 설립의 일등 공신도 맞다.

그는 돈은 없고, 가진 건 배밖에 없다고 노래 부르면서도 이자 주기 싫어 현금으로만 배를 사는 억만장자이시다.

"The best ship is friendship. (최고의 배는 우정입니다.)"

헤르비웨른 한손 Nordic American Tankers 회장은 40년 가까운 한국과의 인연을 이 한마디로 말했다.

노르웨이 사람인 한손 회장은 대표적인 친한파이다.

선주 대부분이 일본에서 선박 발주를 하던 80년대 당시 그는 대우조선에 배를 주문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그의 한국 사랑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NAT를 창업하면서 가장 먼저 발주한 세 척의 유조선도 삼성중공업에서 만들었다.

한손 회장은 '최근 중국 조선소가 많이 치고 올라왔지만, 여전히 품질 면에선 한국을 따라오지 못하며 한국 조선사들은 우리를 한 번도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신뢰는 2016년 유례없는 수주 절벽 속에서도 그가 삼성중공업에 16만t급 유조선 세 척을 발주해 가뭄 속 단비 역할을 톡톡히 했다.

또, 당시 조선 해운 불황에 발주 취소와 인도 연기 속에서도 한손 회장은 약속대로 선박을 인도해 갔다.

한손 회장은 적을 만들기보다 친구를 만드는 것이 좋고, 친구들과 싸우기보다 적들과 싸우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하나를 주면 꼭 하나를 되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으며, 좀 손해를 보는 듯 사는 게 더 낫더라는 경험담을 덧붙였다.

한손 회장은 서구 사람들이 아직 잘 모르고 있으나 세계 경제의 패권은 동아시아로 넘어갔다고 말한다.

한국 조선소들이 친환경적인 첨단 기술을 개발해 이를 배에 잘 적용하고 있다.

배가 복잡해지는 것은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고, 선주 입장에서는 배의 핵심적 기능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배를 단순하게 만들라고 한다.

한마디로 겉멋은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이고 기본을 중시하라는 말이다.

이건 글쓴이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려니...

근데 우리끼리 이야기인데 영감이 머리 노랗게 염색하고 셔츠 앞 단추 하나 더 풀어 폼 잡고 다녀봤자 누가 쳐다나 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