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원의 항해일지

상하이 블루스 순이 생각

부에노(조운엽) 2021. 1. 12. 06:39

 

 

홍콩 영화 상하이 블루스의 배경인 쑤저우 다리 아래 젊은 인연

상하이 블루스 순이 생각

음악 : One more time, Laura Pausini https://www.youtube.com/watch?v=c-YzlUsLtpc

One more time, Richard Max https://www.youtube.com/watch?v=a81IOoa9eHs

Spanish version, Una vez mas, Myriam Hernandez https://www.youtube.com/watch?v=3f5v0YXyGW8

일본군의 상하이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불타는 밤.

폭격을 피해 항구를 가로지르는 쑤저우 다리 밑에서 우연히 만난 퉁과 슈.

두 남녀는 전쟁에서 살아남으면 여기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진다.

전쟁이 끝나고 혼란스러운 상하이로 돌아온 퉁은 먹고 사는 짬짬이 다리 밑에서 만났던 그 아가씨를 잊지 못해 어떻게든 찾아보려고 떠돌아다닐 때가 많았다.

십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두 인연은 스쳐 지나갈 뿐 다시 만나지 못했다.

사실 두 사람은 같은 아파트에서 위 아래층 이웃으로 살고 있고,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며, 심지어 아웅다웅하면서도 서로 십 년 전에 만나기로 약속했던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당시 폭격으로 등화관제가 된 캄캄한 밤에 만났기에 세월이 지나 슈와 퉁은 서로의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두 남녀가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서로를 몰라보며 상상 속의 그대를 그리워한다.

퉁은 트럼펫 보다 큰 호른을 불며 작사가가 되어 잘 나가기 시작했고, 슈는 나이트클럽의 댄서로 일하면서 홀로 생활을 꾸려나간다.

슈와 퉁은 그들이 그리워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또 한 번 서로에게 운명처럼 끌리게 된다.

한국전쟁 전후 우리나라의 혼란과 궁핍이 연상되며, 어느 시대나 젊은이들의 풋풋한 사랑, 상하이의 화려한 밤의 세계 등이 잔잔하게 어우러진 홍콩 영화이다.

상하이 그 거리에서 순이와 손잡고 거닐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로사리오항에서 옥수수를 한배 가득 싣고 남대서양, 인도양을 거쳐 상하이에 와서 약 한 달을 대기하고 또 한 달 동안 하역했었다.

그때 우연히 순이를 알게 되어 눈이 맞아 거의 매일 상하이를 돌아다녔다.

연변 억양에 순박하고 웃는 모습이 예뻤던 순이.

이 또한 배를 타지 않았으면 만날 수 없었던 인연이려니...

둘이 만나서 인민공원을 수없이 거닐었다.

아무 쿵쿵치처(공공 버스)나 타고, 내리고 싶으면 내렸고, 때 되면 식당에 가서 현지 음식을 먹으면서 중국어를 배우기도 했다.

그때 맛있게 먹었던 칭조루핀, 칭차오샤연 같은 음식은 지금도 그 맛과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배에 있던 읽기 쉽고 재미있는 한국 책도 보라고 여러 권 주었다.

나중에 사복 공안이 조사할 게 있다고 다 빼앗아 갔다고 들었지만.

대리점 갈 때나 시내 관광할 때 운전하고 안내하던 양반들이 다 사복 공안이었고, 상부에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하는 모양이었다.

헐, 안기부에도 그 사실이 들어갔을까?

음울한 회색의 도시 상하이 시내 고층 건물 근처 부둣가에 걸어 다닐 때 강렬했던 기억은 온몸에 땟국물이 질질 흐르던 서양 혼혈 아이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면서 중국 말로 구걸하는 것이었다.

다 시대가 남긴 비극의 희생양이었다.

하역을 마치고 출항할 때 부두에 서서 그 청순한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얀 손을 한없이 흔들던 순이.

그걸 보니 억장이 무너져 당장 배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 또한 마도로스의 숙명이려니...

그녀와 나누었던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수많았던 이야기 중 내가 남조센에서 태어난 것이 참 부럽다고 했다.

순이 엄마 아빠는 한국인인데, 국적만 중국이지 중국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 사람도 아닌 조선족이라 어디에서도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했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다.

사랑이 실체처럼 보이면, 그토록 많은 사람이 사랑 때문에 목숨을 걸거나 환상에 젖어 눈물짓지 않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기만 콩깍지가 끼어 상상 속에 혼자만의 시인이 된다.

사랑은 몸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낀다.

영혼에 깊숙이 박혀 영원히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죽을 때까지 나만의 아름답고 슬픈 추억으로 잊히지 않고 남아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은 다양하고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이를 키워보면 누구나 사랑하게끔 태어난 것 같다.

대부분의 첫사랑은 길게 가지 않는 모양이다.

첫사랑의 기억은 오랫동안 남아 다시 돌이킬 수도, 잊을 수도 없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잠깐 스쳐 지나간 인연이지만,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는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는 게 틀림없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만이 아는 설명하기 쉽지 않은 아름다운 마음이다.

왜 사랑하는지 묻지 마라.

사람이니까 사랑한다.

한번 자신의 영혼을 흔들었던 뜨거운 사랑은 우리 심장을 뛰게 하고, 죽을 때까지 그 사랑은 가슴 한쪽에 남아 살아 숨쉰다.

상하이 순이에게 한때 애틋한 감정을 가졌던 것같이 뛰는 가슴이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살다가, 죽으면 썩어질 몸.

이 글 보면 남희가 칼 들고 쫓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