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산이 보이는 바다에서 항해하는 유조선
후지산과 남희
해피 라틴호가 지바 들어올 때 오시마섬을 지나 사가미만을 항해할 때 멀리 북서쪽으로 눈 덮인 후지산이 보였다.
사가미고등학교는 김인식 선배가 고딩 시절 야구 친선 경기를 해서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던 지명이다.
맑은 날에는 100여km 떨어진 도쿄에서도 보인다.
저길 한 번 올라가 봐야 할 텐데...
우리나라 큰 산에 비해 경사가 심하지 않고 등산로 관리가 잘 되어 국민 대다수가 오를 수 있어 국민 산으로 불린다.
5부 능선 주차장까지 차, 모토나 자전거로 오를 수 있고, 일찍 출발하면 당일치기 등반도 가능하다고 한다.
등산로는 7, 8월 두 달만 개방한다.
후지산은 높은 만큼 꼭대기는 상당히 추워 1년 내내 밤엔 영하로 내려가고 -40℃ 가까이 내려간 적도 있단다.
일본 사람은 새해 첫 꿈에 후지산을 보면 일 년 재수가 좋다고 생각한다.
후지산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발 3,776m나 되고 아직 활화산이다.
우리나라 지리산, 한라산보다 2배 가까이 높고 백두산보다 천m나 더 높다.
희한하게 봉우리 하나만 우뚝 솟았고 일본의 영산으로 꼽힌다.
한민족이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으로 생각하는 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후지산을 영산 취급한 것의 영향을 받은 거라 한다.
일제강점기 전까지는 단지 크고 신성한 산 정도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천만 년 전에는 후지산이 있던 자리가 바다 밑바닥이었는데 지각 변동과 화산 폭발로 융기하여 산이 되었단다.
후지산은 세계의 유명한 산들에 비해 특별히 멋지진 않다.
그러나 수많은 문학작품과 그림에 나온 것처럼 일본 문화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이다.
눈 덮인 산이 멀리서 바라보면 가까워 보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멀어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작가의 예술작품이 나오게 한 영감과 창작 의욕을 불러일으키게 된 건가.
후지산은 지난 천 년 동안 열 번 정도 폭발했었고, 마지막은 18세기에 일어났다고 한다.
삿갓을 씌워 놓은 듯한 산은 언제 또 뚜껑이 열릴지 모를 일이다.
지금도 살아있는 화산이니까.
후지산이 삼백 년 전처럼 대폭발한다면 흘러내리는 용암을 피해 인근 주민 백여만 명 이상이 피난 가야 한다.
일본 정부가 후지산 폭발을 가정해 피해 규모를 모의 실험해봤다고 한다.
세 시간 만에 도쿄와 주변 도시들이 화산재로 덮여 자동차와 철도 운행을 할 수 없고 수도기능이 마비되는 지옥도가 될 것이란 결과가 나왔다.
일본 사람은 후지산을 한 번도 오르지 않은 사람은 바보, 두 번 오른 사람 또한 바보라는 속담이 있다.
일본인들이 후지산을 사랑하는 마음과 막상 올라가 보면 참 별거 아니라는 뜻이다.
화산은 나무가 자랄 수 없는 땅이라 휑해서 가까이에서 보는 풍경은 이름에 비해 볼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멀리서 보는 게 가까이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겉만 화려하고 실속 없는 사람을 후지산에 빗대기도 한단다.
겉도 볼 거 없고 실속 또한 없는 나 같은 영감은 뭐라 할지 궁금하다.
산은 예로부터 신의 공간인 하늘과 인간이 사는 땅 사이의 신비스러운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진과 화산 폭발, 쓰나미가 많은 일본에서 산을 신성시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절, 신사들이 곳곳에 있어 매년 수천만 명이 방문하여 저 치른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마이산 신제 등 신라 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산신제 제례가 있었다.
중국이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일부 소수민족 외에는 산신을 모시는게 퇴색했으나 한국, 일본에서는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예전에 배에 여자를 태우면 사고가 난다고 금기시하던 것처럼 후지산에는 여성이 올라갈 수 없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후지산뿐만 아니라 신성한 산이나 장소에 여자가 못 가게 하는 관습이 있어 19세기까지는 여자가 들어가지 못했다.
후쿠오카현에 있는 작은 섬 오키노시마에는 아직도 여자가 섬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산사랑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언젠가 등산용품 판매량이 세계 1위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등산뿐만 아니라 산책길도 좋아하는 것 같다.
서울 둘레길,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 산 주변 곳곳에 길을 만들고 국민들이 걸어다니면서 인증 샷을 날리는 건강 문화가 자리 잡았다.
외항선을 타겠다는 마도로스의 꿈을 꾸면서 산에 참 많이 다녔다.
친구들과 나이트클럽 몇 번 가보고 그 화려하고 환상적인 환락에 빠지면 내 인생 종 치겠다고 생각하고 딱 끊고, 더 산에 오르게 됐다.
고시 정도는 아니지만, 쉽지 않은 통신사 면허를 따기 위해 수많은 밤을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주변 산에 올라갔다.
산과 숲이 좋았고 계곡물에서 밥해 먹는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면서 바다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과 친구들과 도봉산에 올라갔을 때였다.
젊은 남희는 여기서도 산을 얼마나 잘 타던지 거의 앞장서다시피 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뒤쫓아 갔는데 희한하게 남희 청바지 엉덩이에 당연히 있어야 할 라인이 안 보여서 저 가시나가 속에 아무것도 안 입었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정상에 올라갔다가 인근 계곡에서 밥을 해 먹자 해서 모두 남희 얼굴을 쳐다보자 그녀의 말이 야무졌다.
“야! 왜 날 쳐다보냐? 여기까지 와서 내가 밥할 군번이냐? 대한제국 건국 이래로 엠티 와서 여자가 밥하는 거 본 사람 있으면 나와 봐. 누나는 땀 좀 식힐 테니 은여비 니가 식사 당번해라. 참치 캔 넣고 김치찌개 맛있게 해 봐.”
내가 눈을 크게 뜨고 어이없어하자 남희는 주먹으로 때리는 시늉을 하면서 ‘예쁜 언니가 하라면 해, 짜샤!’ 해서 할 수 없이 식사 당번을 한 기억이 난다.
돌도 소화할 거 같고 날아가는 새만 봐도 웃음보가 터지던 젊은 우리들이 아름다운 산속에서 동기들과 땀 흘린 후 먹는 밥맛이란...
HAPPY NINA호 탈 때 로테르담에서 남희가 못 말리는 당돌함으로 배에 쳐들어오면서 무전으로 한 말이 생각난다.
"신기하지. 나 지금 경찰 패트롤카에서 무전 치는 거야. 사이렌 소리 들리지? 그리고 너 그때 도봉산에 갔을 때 내 엉덩이만 쳐다보고 올라온 거 다 알아. 그래서 난 일부러 더 흔들고, 짜샤! 그게 괘씸해서 널 식사 당번시킨 거고. 생긴 거하곤 달리 은근히 엉큼해 가지고..."
성냥갑보다 작게 보이는 도시의 건물과 점점이 보이는 차를 내려다보며 세상사 높은 곳에서 보니 다 별거 아닌데, 이 좋은 세상에 하지 않아도 될 걱정 근심들을 왜 그리 안고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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