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극에서 발견된 개체 수는 물론 생활방식 등 알려진 게 거의 없는 부리고래
고래 III, 바다의 소음 공해
해운 물동량이 늘면서 선박에 의한 소음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바다 생태계 전반에 소음의 영향으로 해양 생물이 제 명에 못 살고 있다.
인류는 지구를 오염시키고 대기의 온도를 높인 것뿐만 아니라 이제 바다까지 시끄럽게 만들어 수많은 해양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만수무강에 지장을 주고 있다.
해양 전문가들은 인류가 대양에서 해운, 어업, 개발 활동으로 내는 소음이 사상 최대로 커졌다고 말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해상 물동량이 늘면서 주요 항로의 소음은 서른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해양동물은 생활 습성과 행동 그리고 일부는 생존에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해양동물에 소리가 중요한 소통 수단인 데는 바다에서는 기껏 수십m를 볼 수 있고, 냄새는 수백m 정도까지 맡을 수 있다.
그런데 소리는 몇십㎞까지 빠르게 퍼져 나가기 때문이다.
해파리 같은 무척추동물부터 물고기, 파충류 등은 저주파 음을, 고래는 고주파 음을 감지하도록 진화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대양에는 지구 자체가 내는 소리와 생물이 내는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바람과 빗방울이 바다 표면을 두드리고, 해저 화산 분출과 심해저 열수분출구 소리는 수백㎞까지 퍼진다.
열수분출구는 다양한 심해 생물의 보고이지만, 자연적인 소리를 내는 일부이기도 하다.
극지의 여름엔 빙하가 깨져 바다로 떨어지고 빙산끼리 부딪치거나 갈라지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바다 생물도 게부터 거대한 혹등고래까지 짝짓기, 이동, 먹이 찾기, 무리 짓기 등에 다양한 소리를 낸다.
딱총새우는 집게를 부딪쳐 내는 충격파로 먹이를 기절시키는데 새우 떼가 일제히 사냥에 나서면 엄청난 소리가 난단다.
고래는 바닷소리 경관의 주역이다.
특히 혹등고래는 자작 노래까지 하는 거로 알려졌다.
과학자들은 인류가 새로운 소음원이기도 하지만, 생물과 지구가 내는 소리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대양에서 주요한 소리의 원천인 고래를 수백 년 동안 잡아먹어 개체 수가 줄어든 것이 그런 한 예이다.
대규모 해초 숲과 산호가 그곳에서 양한 소리를 내던 생물과 함께 급격히 줄면서 침묵의 바다가 되어간다.
우리나라에서도 칠산 앞바다의 조기 떼 우는 소리에 밤잠을 설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올 정도로 육칠십 년대까지 산란기 참조기 무리는 바다를 울렸다고 한다.
제주도 남서쪽 중국해에서 겨울을 난 참조기는 봄에는 전라도 칠산 앞바다, 5~6월에는 연평도 앞바다까지 올라와 산란한다.
어느 화창한 봄날 대만 부근을 항해할 때 엄청난 조기 떼가 수면 위로 뻐끔뻐끔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참조기는 해마다 산란하러 오지만, 어민은 속이 뚫린 대나무를 물속에 넣고 소리를 들어 미리 알았다.
일종의 대나무 어군탐지기인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산란기 참조기는 매우 시끄럽게 울기 때문이란다.
멕시코 캘리포니아만에도 우리나라 서해처럼 조기가 산란하기 위해 엄청나게 떼를 지어 몰려드는 곳이 있다.
콜로라도강이 만으로 흘러드는 삼각주에는 해마다 봄이 되면 수백만 마리의 멕시코 조기가 올라와 물 반 조기 반이라고 한다.
이 조기는 길이 1m, 무게 10㎏이 넘는 데 큰 무리를 짓고 시끄럽게 우는 것은 참조기와 비슷하단다.
이 물고기 떼가 내는 소리가 해양동물 가운데 가장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밤중에 개구리나 두꺼비 수십 마리 우는 것도 시끄러운데 물고기 수백만 마리가 한꺼번에 울어대니 얼마나 시끄럽고 경이로울까.
이 소리로 무리를 유지하고 산란이 임박한 걸 알린다고 한다.
멕시코 어민들도 전통적으로 물고기가 내는 소리를 듣고 만사 제쳐놓고 조기를 잡으러 온단다.
작은 어선 한 척으로 잠깐만에 조기를 만선한다.
수백 척의 어선이 어기 동안 잡는 조기는 수백만 마리나 된다고 관계자가 밝혔다.
이 물고기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과학자들은 보전 필요성을 이렇게 말했다.
"모든 성체가 한 장소에 모여 이렇게 크게 소리를 내는 것은 보전할 가치가 있는 바다의 장관이다."
이제 무척추동물에서 물고기와 해양 포유류까지 해양 소음피해는 일상적이고 광범위한 현상이 됐다고 과학자들은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차폐 효과라고 부른다.
마치 마스크를 낀 사람의 표정을 잘 읽지 못하듯 해양동물은 음향 대역이 비슷한 환경 소음에 가려 짝짓기, 먹이 찾기, 포식자 회피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특히 선박의 저주파 소음이 주요한 마스크 구실을 한다고 과학자들은 밝혔다.
해양 소음은 환경 속에 섞여 있는 다른 오염원과 달리 기술적 해법과 규제를 통해 바로 줄일 수 있다.
과학자들은 그 증거로 코로나 사태 후 지구 인구의 반 이상이 거주지에 봉쇄되었을 때 많은 해양 포유류가 연안에 나타났던 사례를 들었다.
떼 지어 은밀하게 접근해 빠른 속도로 공격하는 범고래에 백상아리도 혼비백산 도망치며 오줌을 지린다고 한다.
범고래는 집단 사냥에 능하고 덩치도 커 바다 생태계에서 백상아리를 제치고 최고 포식자로 친다.
두 바다 포식자가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고, 그것을 관찰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매년 봄과 가을에 코끼리물범이 미국 서부 몬테레이만에 새끼를 낳으러 오는데, 어린 물범을 사냥하기 위해 범고래와 백상아리가 찾아온다.
백상아리 전문가 스콧 앤더슨은 고래 관광선을 타고 있었는데 범고래가 백상아리를 공격해 간만 빼먹는 모습을 봤다고 밝혔다.
백상아리는 강력한 포식자이지만 범고래에게는 째비가 안 되는 모양이다.
범고래가 바다에서 사냥하거나 스쳐 가도 백상아리는 모두 꼬랑지를 내리고 그곳에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범고래의 출현으로 가장 덕을 보는 동물은 백상아리의 주식인 코끼리물범이다.
몬테레이만에서 번식 철에 백상아리가 물범 수십 마리를 잡아먹는데, 범고래가 나타나면 물범이 백상아리에 먹히는 일은 없다.
포식자는 직접 잡아먹는 방식으로만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다.
동물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자기 영역을 바꾸는 식으로 대응하고, 이것이 생태계에 연쇄효과를 일으킨다.
범고래에 대항하기 위해 향고래는 몸집을 키웠고 들쇠고래는 큰 무리를 이뤘다.
허파로 숨을 쉬어야만 살아가는 동물 가운데 깊은 바다에 잠수해 먹이를 찾는 종이 여럿 있다.
코끼리물범, 바다사자, 물개 같은 포유류와 황제펭귄, 장수거북 등이 그렇다.
고래도 잠수 선수이다.
특히 깊은 바다에 내려가 먹이를 사냥하는 이빨고래는 놀라운 잠수 능력을 보인다.
향고래는 바닷속 이천m 이상 잠수해, 한 시간 넘게 대왕오징어를 사냥한 기록이 있다.
얼음처럼 차갑고 캄캄한 데다 허파가 쪼그라들 정도로 수압이 높은 심해에서 고래가 어떻게 사냥하는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그동안 밝혀진 것으로는 헤모글로빈 같은 단백질이 혈액과 근육에 다량 분포해 산소를 많이 저장한다.
또 흉곽을 유연하게 조절해 수압에 눌린 허파에서 질소가 혈관으로 녹아드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심장 박동수를 줄이고 뇌와 심장 등 꼭 필요한 곳에만 산소를 보내 소비를 억제한다.
덩치가 큰 고래일수록 심해 잠수 능력이 뛰어나다.
몸속에 보관할 수 있는 산소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길이 20m에 무게 60t까지 나가는 향고래보다 심해 잠수를 잘하는 고래가 있다.
무게가 1∼2t에 지나지 않는 작은 고래인 부리고래가 그렇다.
부리고래는 가장 연구가 되지 않은 고래로 과학자들은 신비의 고래라고도 말한다.
깊은 바다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데다 보트의 접근을 꺼려 좀처럼 보기 힘들다.
죽어서 해안에 떠밀려 오기 전에는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고래여서 밝혀진 게 별로 없다.
그런데 이 고래가 포유동물 가운데 가장 깊이 잠수하고 가장 오래 머문다고 한다.
미국 과학자들이 캘리포니아의 부리고래에 위성추적 장치를 부착해 조사하니 수심 삼천m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어떤 고래는 2시간 넘게 잠수했다고 발표했다.
부리고래는 주둥이가 새의 부리를 닮아 이런 이름을 얻었다.
가슴지느러미를 몸에 패인 홈에 집어넣고 심해를 향해 쏜살같이 가는 모습은 영락없이 영화에서 보던 어뢰 같단다.
잠수해서 시간이 지나면 몸속의 산소를 모두 써버리고 부산물로 젖산이 쌓이기 시작한다.
대개의 해양동물은 이 한계에 이르기 전에 수면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부리고래는 한계 시간의 두 배 가까이 물속에서 버틸 수 있다.
펭귄, 바다사자 등 몸집이 작은 다른 해양동물도 부리고래처럼 한계를 넘는 잠수를 한다.
부리고래가 심해 잠수에서 돌아온 뒤 다시 잠수에 나서기까지 1시간 넘게 걸린다.
과학자들은 몸에 축적된 젖산이 분해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그렇다면 부리고래는 왜 그 고통을 무릅쓰고 깊은 바다로 사냥을 하러 가는 걸까.
덩치도 작은 데다 먹이를 찾고 동료와 소통하는 신호음도 귀가 예민한 범고래가 도청해서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부리고래가 범고래에 잡아먹히면서도 멸종하지 않고 수백만 년 동안 살아남은 비결은 뭘까.
부리고래는 극단적인 잠수로 범고래를 따돌리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심해에 먹이가 풍부하지 않지만, 경쟁자가 적어 상대적으로 먹이 활동 하는 게 쉽기 때문이 아닌가 추정했다.
부리고래는 무슨 특별한 초능력이 있어 심해 잠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포식자에 먹히지 않기 위해 깊이 들어가 먹이를 구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극한상황에서 인위적 교란이 가해지면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부리고래는 시간과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잠수에 할애하고 있는데 해군의 음파탐지기나 선박의 엔진 소음이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리고래는 미군의 해상훈련 때 해변에 좌초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과학자들이 주목해 온 고래이다.
부리고래는 사냥을 마치고 수면으로 올라올 때 전혀 소리를 내지 않는다.
향고래 등 다른 심해 잠수 고래는 기다리는 새끼, 동료와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끽끽대며 고주파 음을 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향고래 등은 사냥 후 거의 수직으로 최단 시간 안에 떠오르는데 부리고래는 경사지게 지그재그로 올라온다고 한다.
그래서 범고래는 부리고래의 마지막 고주파 음을 들은 뒤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된다.
과학자들은 범고래의 시야와 속도를 고려하면 수면에 떠 오르는 부리고래를 잡을 확률은 1%도 안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심해 잠수가 유일한 피난처인 이 겁많은 고래는 거의 들릴 듯 말 듯 한 소음에도 범고래가 나타났을 때처럼 공포에 떨며 도망친다.
그 과정에서 해안에 좌초해 떼죽음하는 사고가 나오고 있다.
과학자들은 선박의 소음으로 바다 생태계 전반에 걸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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