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고래 쇼, 보는 이는 재미있겠지만...
사람과 친한 범고래의 킬러 본능
젊었을 때, 특히 학생 때 즐겨 듣던 음악을 지금 다시 들으면 전율할 때가 있다.
추억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내 청춘의 단편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그때 주변에 같이 살던 엄마, 아빠, 친지 그리고 친구와 짝사랑했던 이성 동무들...
그러면서 그때 내 안에 내가 여럿이 있었다는 걸 느낀다.
그런 뒤죽박죽인 내 삶의 궤적을 돌아보며 부끄러웠던 젊은 날의 초상도 돌이켜 본다.
우리 중생은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모양이다.
한바다에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하게 우리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거대한 포식자가 있다.
미국, 일본 해양 쇼나 유튜브 영상에서 재미있는 범고래 쇼를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길이 7m가 넘는 거대한 덩치가 수면 위로 뛰어오르고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성에 꼬리를 흔들며 물벼락도 날리는 쇼 말이다.
이 귀엽고 인간과 친한 범고래가 의외로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대왕고래, 백상아리 등 안 잡아먹는 게 없는 킬러 중의 킬러라고 한다.
범고래의 영문명이 Killer whale이듯이 바다 생물뿐 아니라 갈매기, 육상 동물인 곰, 사슴 등도 사냥한다.
그런 범고래가 인간을 공격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범고래는 몸집이 작아 전혀 상대가 안 되는 인간에게 오히려 가까이 다가왔다.
범고래가 인간을 먹이 대상으로 인식하고 공격했던 경우는 알려진 적이 없다.
심지어 범고래에게 쫓기던 물개가 사람이 탄 보트로 도망쳐도 배를 공격하지 않고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씩 쪼개고 가더란다.
우리는 아직 범고래와 대화가 통하지 않기에 그 녀석들이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알 수 없다.
범고래는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임에도, 인간은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게 구는 희한한 특성이 있다.
다만 물개나 다른 동물로 착각해 공격하거나, 인간의 학대로 스트레스가 쌓여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아 공격한 사례는 있다.
종종 호랑이나 곰 등 대형 육식동물이 사람을 잡아먹거나, 코끼리나 하마 등 초식동물도 사람을 보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우리가 오랫동안 길러온 개도 인간을 공격한 게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미국에서는 매년 약 오백만 명이 개에게 물리고 백여 명의 사망자가 나온다고 한다.
범고래가 엄청난 덩치로 모든 것을 포식해도 인간을 경계조차 하지 않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20세기 이후 백여 년 동안 야생 범고래가 인간을 공격한 일이 보고된 적은 단 한 번뿐이다.
1972년 서프보드를 타던 사람을 물었는데, 먹이가 아닌 줄 알고 곧 놓아주었다고 한다.
범고래는 인간을 공격한 적이 거의 없고, 사망한 일도 없기에 사람에게 위해 한 동물로 분류하지 않는다.
다만, 범고래가 너무 크고 힘센 동물이라 보트가 뒤집힌다든지 하는 사고 사례는 몇 차례 보고된 적이 있다.
그리고 너무 가까이 접근했다가 지느러미나 꼬리에 스치기만 해도 중경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만일 박치기 공격이나 물리면 죽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범고래가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범고래가 사람을 공격했던 사례는 돌고래쇼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놈이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라.
범고래는 한바다에서 하루 수백km를 헤엄쳐 다니고, 물속 천m 이상을 들락날락하며 먹이도 입맛대로 골라 먹는 야생 동물이다.
그런 놈들이 100m 남짓한 수족관에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공연할 때 주는 작은 물고기로 연명하며 살아야 하니 나 같아도 스트레스받아 돌아가시겠다.
공연에서 실수하면 교육 시킨다고 먹이를 안 주고 굶기며, 밤에는 고참 돌고래가 일진처럼 군기를 잡아, 이 녀석이 꼭지가 돌아 조련사를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익사했다.
이마저도 사람을 먹으려고 공격한 것은 아니었고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범고래는 워낙 구하기가 힘들고 길들이기가 쉽지 않아 죽이지는 않았단다.
어부들은 오래전부터 범고래는 잘 잡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고기가 맛이 없기 때문이란다.
고래 종류가 다 그렇지만 범고래의 고기에는 기름이 많이 들어 있고, 사람이 절대로 소화할 수 없는 종류라고 한다.
한때 횟집에서 참치로 속여 팔던 기름치나 비슷한 모양이다.
물론 세제나 왁스 재료로 쓰일 수는 있겠지만, 경제적인 대체재들이 많은데 굳이 비싼 경비 들여가며 포획금지를 어기고 범고래 기름을 만들 일이 있겠는가.
범고래는 공격성이 강해 바다의 폭군이라 불린다.
세비야대 해양생물연구소의 연구원은 '오랜 시간 범고래를 관찰했지만, 사람과 배를 공격한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 스페인 인근 바다에서 범고래가 이례적인 행동으로 사람과 배를 공격한 사례가 한두 건도 아닌 수십 건이 보고되었다.
대서양 범고래를 연구하는 국제 조사단은 범고래의 이례적인 행동 원인을 조사, 분석했다.
지난 2020년 이전까지 지브롤터해협 등에서 범고래가 사람을 공격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약 두 달간 신고된 범고래 공격 신고 건수는 삼십여 건이 넘었다.
일부 해안은 범고래의 공격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요트나 작은 배 출항을 금지했다.
원인 파악에 나선 조사단은 우선 범고래가 배를 공격할 때 찍은 현장 사진과 영상을 분석했다.
범고래 두 마리의 옆구리에 상처가 있었다.
그게 왜 생겼나 추적하면서 공격 행동과의 연관성을 살펴봤다.
상처가 난 시기는 범고래 공격이 시작된 시점과 비슷했다.
조사단은 범고래가 인간의 공격을 받았고, 이에 열 받은 녀석들이 집단 반격에 나선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범고래들이 매번 한 시간 이상 공격한 점, 요트의 방향키 부분만 겨냥해 들이받은 것을 보면 같은 무리의 고의적인 공격 행동이라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에서는 범고래의 공격이 발생한 지브롤터 해협은 평소 어부와 범고래의 갈등이 많은 곳이라고 한다.
어부들이 범고래의 주식인 참치를 낚아 올릴 때 그것을 빼앗아 먹으려는 범고래와 자주 싸웠단다.
하지만 어부의 위협에도 범고래가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코로나 19로 기적처럼 조용했던 바다에 다시 사람이 나타나 고기를 잡고, 요트 운행이 잦아졌다.
범고래가 다치며 평화가 깨지고 극도의 생존 위기를 느낀 녀석들이 반격에 나섰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범고래가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오랜 불문율이 세상이 바뀌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깨지고 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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