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엽 : 탱고의 도시 La Boca 항과 무희 (Photo 여행) [7]
2931| 2007-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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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탱고의 발상지인 La Boca 항. 지난 날 화물선이 줄지어 정박해 있던 이곳은 새로운 삶을 찾아 이민 온 사람들, 선원, 인부 그리고 Gaucho(목부)들, 또 이들의 돈을 노리는 술집과 여자들이 어울려 밤이 되면 일상의 고단함과 애환을 Tango 춤과 함께 떨쳐버리곤 했다. 지금은 그 영화도 사라지고 관광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탱고의 도시답게 어느 곳을 가도 애절한 선율에 맞춰 탱고를 추는 댄서를 볼 수 있다. 탱고의 발생지인 보까 항에는 여전히 작은 탱고 바가 늘어서 있지만, 안전상 가능하면 늦은 밤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시내 중심에서 가까운 산뗄모나 몬세라또에서 편안하게 탱고 음악과 춤을 감상할 수 있다. 탱고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세뇨르 땅고' 극장이나 '꼼쁠레호 땅고' 극장 등 규모가 큰 탱고 바로 가는 것이 좋다. 탱고의 탄생에서 최근 트렌드까지 뮤지컬 형식으로 탱고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19세기 말, 파리 보다 더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겠다는 꿈이 영글었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호시절은 지나갔지만 보까 항엔 탱고의 물결과 관광객의 발걸음이 여전하다.
영화 ‘탱고 레슨’의 감독이자 주인공인 샐리 포터는 '탱고에서 인생을 배운다'고 했다. 탱고를 배우면서 상대를 리드해야 하는 순간과 상대방의 결정에 따라야 할 순간, 방향을 결정하는 법과 잠시 멈춰 기다리는 법, 힘을 줘야 할 때와 힘을 빼야 할 때를 판단하는 법 등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란다. 탱고의 애잔한 음률에 따라 느리고, 빠르게, 관조적으로, 때로는 격정적으로 탱고의 리듬에 몸을 맡기며 고즈넉한 긴 밤을 보낸다면 좀 더 인생이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목동들이 박차가 붙은 장화를 신고 스텝을 밟기 좋게 기타와 반도네온 등으로 연주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처녀의 집 뜰에서 연정을 호소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 한 것이 전해져 '미롱가 땅고'라 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탱고의 발생지답게 아직도 노천 탱고 쇼를 보여주는 무희들이 즉석에서 관광객들과 호흡을 맞추기도 한다. 이곳에서 토요일마다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그때 오면 아르헨티나 문화를 가까이 접할 수 있어서 더 멋진 여행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이 거리가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탱고 춤을 추던 곳이다. 아마 과거에는 술집 골목 이었고 이민자의 애환과 고뇌가 많이 녹아 있는 거리였나 보다. 이곳에서 일하던 조선소의 가난한 인부들이 쓰고 남은 페인트를 얻어와 자기 집에 고향의 강렬한 원색 파스텔 풍의 테라스, 외벽 등을 재현하면서 이를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 Quinquera Martin에 의하여 새로운 장르의 화법이 탄생하였다.
탱고는 춤의 마지막이라고도 하고, 나이 들어서 추는 춤이라고도 하는데 아르헨티나 탱고는 90세, 100세가 되어도 즐길 수 있는 춤이다. 레꼴레따 공원에서 한 영감님이 젊었을 때를 회상하며 한 스텝…….
'다정했던 기억, 너는 떠나고 나는 남았네. 너의 손길, 기억, 사랑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어렴풋한 기억만이 주위를 감도네.' 아코디언을 독일식으로 바꾼 반도네온의 선율과 노래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끊임없이 남성의 허리에 감기는 여성의 매끈한 다리 곡선, 붉은 조명에 흔들리는 댄서들의 서글프면서도 매혹 넘치는 표정, 끓어오르는 섹슈얼리티를 속으로 꾹꾹 눌러 담다가 한 순간 폭발해버리는 절도 있는 스텝. 지금 함께 하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이별을 예감하는 듯한 서글픔과 인생의 관조가 무대 위에 넘쳐나고 있다.
쇠락한 아르헨티나가 아득한 옛날을 회상하고 있다. 미국,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세계 경제 대국이었던 시절. 쇠가죽만 벗겨 수출하고 고기는 땅에 버릴 정도로 풍성했던 그 옛날. 끝 간 데 없이 추락한 현재의 아르헨티나가 역사상 최고의 탱고 가수 까를로스 가르델을 흉내 내는 모창에 맞춰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고 지금 서서히 용트림을 하고 있다.
조선소, 가죽 공장, 도축장으로 둘러싸인 보까 항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고단한 이민자, 선원 등의 노동자들에게 세르베사(맥주)나 비노(와인) 한잔과 함께 누리는 탱고 음악은 이들의 삶에 커다란 활력소였으리라. 땀에 전 작업복을 벗어 버리고 화려한 슈트로 갈아입은 채 보까 항의 밤거리를 활보하던 노동자, 격정적인 춤을 앞세워 거리의 여자들을 유혹하던 청년, 여성이 부족했던 탓에 뒷골목 으슥한 곳에서 동성 짝을 찾기에 여념이 없던 슬픈 표정의 남자, 이런 모든 풍경이 곳곳의 벽화에 담겨져 관광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준다.
스페인이나 많은 유럽에서 볼 수 있던 돌로 포장한 도로를 아르헨티나에서도 전국 각지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예전에 유럽과 그 돌을 소고기와 맞바꾸었다는데 나중에 아스팔트를 포장한 도로 밑에는 이 돌들이 그대로 있다고 한다.
보까란 말은 입, 하구를 말하며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의 강 하구이다. 화려하고도 세련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소위 빈민가로 여겨지는 오래된 도시인데 유럽의 이민자들 중에서 신세계로 와서 사회의 최하층으로 살았던 이탈리아 계 이민자들이 주로 모여 살던 곳이었다.
탱고의 기원에 대해서는 연구가들 사이에 약간의 다른 견해들이 있으나, 대체로 2개의 계통으로, 하나는 '콜럼버스 아바네라(Columbus Habanera) 땅고'이며, 또 다른 하나는 유럽 사람들이 많이 이주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발생한 '미롱가 땅고'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카리브 해역인 산살바도르를 비롯해 쿠바 등을 발견한 뒤, 스페인 사람들이 많이 이주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이 지역에는 인디언 원주민들이 추는 야성적인 리듬의 춤이 있었고 이것과 스페인의 전통적 음악과 어울려 생긴 음악이 아바네라 형식의 탱고인 것이다. 이 지역에 이주한 유럽 사람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하여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데려다가 노동을 시켰으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들 사이에 혼혈아가 출산되어 이 혈통을 '아바네라'라 하였다. 이것은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란 이름에서 붙인 것이라 한다.
이러한 아바네라풍의 탱고가 중남미, 멕시코 이남의 전 지역에 불꽃처럼 파급되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까지 전파되었고 항구의 술집에서 뱃사람과 추기 시작한 '미롱가 땅고'와 접목된 것이 '아르헨티나 땅고'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구 뒷골목에서 그저 그렇게 추어졌을 탱고는 무성영화시대인 1920년에 파리에서 상영된 탱고영화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켜, 이를 계기로 프랑스에서는 맵시 있는 탱고로 변화하여 대유행을 하게 되었다. 이 New 스타일의 탱고를 '프렌치 탱고'라 하며 이 음악과 춤이 다시 독일에 건너가서 원래의 탱고 음률이 단음(Staccato)적인 음악으로 편곡되어 연주되었고 샤프한 스타일로 변화하게 되었다.
연주하는 악기로는 바이올린, 피아노, 콘트라 베스 등이 표준악기로 되어 있으며, 유명한 탱고의 명곡으로는 불멸의 '라 꿈빠르시따(La Cumparcita)'가 있다. 이 탱고도 세계 춤 경기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고 있다.
La Cumparsita, Astor Piazzo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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